나쁜 편집장 - 말랑말랑한 글을 쓰기는 글렀다
박현민 지음 / 우주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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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기록하며 기꺼이 나쁜 편집장이기를 자처하는 박현민의 에세이.

    

 

1년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핑계로 가장 해이해지는 연말. 마치 달력 한 장만 넘기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처럼 급하게 약속을 정하고 올해 지키지 못한 계획을 곱씹으며 화려하게 일렁이는 전구들에 취하는 나날을 흘려보내면서 말이다. ‘어쩌면 한낱 숫자(48p)’에 불과한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미래를 향한 움직임에만 집중하며 현재를 낭비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다. 끊임없이 전진하는 과거, 현재, 미래 속에서 잠시나마 우리가 걸어 온 길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내일을 살아갈 지혜와 힘이 생길 것이다. 아마 그 일을 <빅이슈>가 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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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헤매고, 여전히 헤매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대(39p)’란 어떤 것일까. 평생 내 생일을 기억해줄 것 같은 몇 명의 친구 얼굴이 떠오르는 것, 공들여 준비한 시험에 합격하길 바라는 것, 아픈 나를 위해 남편이 알아서 집안일을 해 놓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 소소하지만 이루어만 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기대는 나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친구들도, 나와 같이 시험에 응시한 사람들도, 내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서로 기대하지 않는 관계는 쿨하고 미련 없지만 그 속에서 진짜 애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향한, 목표를 향한 기대가 있기에 그것에 맞추려 노력하면서 더 정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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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내가 갈 여행지 정보를 찾아본다.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도 근처 맛집도 미리 체크할 수 있다. 예매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은 바코드로 저장하고 번역 어플도 다운받는다. 덕분에 현지인과 대화할 기회도, 여행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우연한 일들에 대한 기회도 줄어들었다. 처음 가보는 낯선 나라지만 사진으로 수없이 접해 눈에 익숙한 분위기가 한번 쯤 와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지도 어플만 있으면 목적지를 향해가는 발걸음에 자신감이 붙는다. '우리는 낯섦의 설렘을 내어준 대신 타지에서의 걱정과 두려움을 함께 덜어냈다.(121p)' 우리에게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환상의 경험이 아니라 또 다른 곳에서의 일상이다. 여행을 가서도 시차에 맞추어 업무를 처리하고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바쁘다. 박현민의 런던여행기에 뜻하지 않게 완벽한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지금 우리 세대의 모습이 있다. 낯섦을 즐기려하는 여행에 앞서 철저한 준비로 무장하는 지난날의 나도 보였다. 비록 이 곳에서의 삶을 여행지에서 완전히 지울 수는 없더라도 일상에서의 편안한 마음가짐 정도는 여행지에 가져갈 수 있기를.

    

<리뷰어스클럽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세이 #나쁜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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