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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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생일파티를 열 수 있다면 나는 누구를 초대하고 어떤 것들을 나눌 것인가.

    

 

빅엔젤은 보이지 않는 인터뷰어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왔다고 말한다. 그 말을 하기까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곱씹어 보았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 인생이라는 필름을 몇 번을 되감아봐야 할까.

 

죽음은 내가 가본 적 없는 어떤 지구 반대편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다. 평생 그 땅엔 가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자주 떠올리기에 흥미로운 주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이 몇 개의 문장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맞이해야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한 시대를 끝내고 백 년의 삶을 묻은 다음 저녁 전에 집으로 올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수고와 욕망과 꿈과 고통과 일과 바람과 기다림과 슬픔이 순식간에 드러낸 실체란 바로 해질녘을 향해 점점 빨라지는 카운트다운이었다. 그게 바로 소중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 한 방울의 피와 불꽃을 가지고 매 분의 생명을 위해 싸울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

_ 149~150p

 

빅엔젤의 고통은 아무리 가까운 누구라도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다. 재치 있는 말들로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모인 사람들 중에서 나만 존재의 가치가 달라질 것이라는 고독함이 느껴진다. 그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적힌, 그것이 곧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수첩만 봐도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알 수 있다.

 

내 모든 삶이란 건 이제껏 딱 세 마디를 계속 반복하는 삶이라고. ‘오늘 난 죽는다.’ _ 407p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 끝, 죽음, 종료, 마무리뿐이라면 나도 아마 빅엔젤처럼 가끔은 삐뚠 마음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 날씨를 확인하고 드라이브 갈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다음 주에 나오는 신작 영화를 미리 예매하는 재미도 내겐 아무 의미가 없어질테니까. 작은 몸에 세상살이의 설움, 고단함, 기쁨, 보람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을 한데 모아 단단히 응축시켜 놓고 떠나는 진짜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마치 연극 같을까? 짜여진 각본도, 나 하나만 바라보는 관객도 없는 자그마한 무대 안에서 울고 웃는 순간들을 거쳐 비로소 막이 내리면 우리는 깜깜한 어딘가로 걸어가겠지.

 

언덕만큼 늙어버린 페를라를 여전히 가슴 떨리게 하는 빅엔젤(506p)은 아직 존재한다. 더 이상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사랑스러울 빅엔젤의 모습 그대로.

 

그 어떤 철학서적보다 죽음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고 자연스럽게 던진 책이다.

나의 죽음은 나와 다른 곳에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이 고요하게 지속되는 어느 날 문득, 잔잔하게 떠오르는 기억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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