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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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책장에 처음으로 꽂히게 될 한국형 판타지 소설. 화려한 장치나 과학적 기술 없이 지극히 한국의 설화를 기반으로 이야기의 토대를 완성시켰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어른들의 동화랄까.

 

소설을 읽고 서평을 쓸 때는 항상 스포가 되지 않는 범위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구조화시킨 방법으로 소설을 이해했다면 서평에도 녹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용을 전혀 알고 싶지 않으신 분은 보지 말아주세요.

    

  

초반 80페이지 정도까지 보여주는 네 인물의 행동과 말들은 소설의 큰 뼈대를 세워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아무 죄의식 없이 무고한 어린 희생자들을 양산하는 무당 천이의 검은 속내,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하나뿐인 동생을 자기 대신 제물로 내모는 비정한 희현, 자신의 아내를 제물로 바칠 것을 천이에게 부탁한 것도 모자라 처제인 모현을 겁탈하려했던 단오, 홍옥 나리를 향한 연정으로 친구인 모현을 위기에 빠뜨리는 여민. 이 네 인물의 선택과 선택의 결과를 추적해가는 과정이 소설을 짜임새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처음부터 관심 있게 보았고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희현의 일생이었다. 하나뿐인 혈육을 냉정하게 제물로 권할 때는 풀어야 할 가슴 속 응어리가 있었을 것이라 확신이 들어서였다. 분명하고 강도 높은 과 희미하고 불확실한 의 표현이 희현 개인의 비극과 슬픔을 더 선명하게 나타냈다. ‘모현 수호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진 홍옥 나리와 명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던 모현과 달리 어린 시절 상처와 남편과 자식을 잃은 절망으로 얼룩진 언니의 삶은 너무도 대비된다.

 

달 밝은 밤이었다.418p에 나오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오직 달님만이’. 아마 누가 인간의 탈을 쓰고 세상을 어지럽히려는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달님만이 알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의 형상을 한 호랑이를 찾아내는 것처럼 어둠 속 눈동자 색깔로라도 구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 마을을 이루고 사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무성한 소문, 시기, 욕심, 희생, 용기를 적절히 버무려 머릿속에서 전설의 고향을 방영케 한다. 전래동화가 장엄한 민화로 다가와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 이 책. 공상과학소설의 범람에 지친 우리에게 주는 담백한 처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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