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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평점 : 
작가가 작품 하나를 써내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30여 년 동안 이 책을 포함해 6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는 이창래 작가의 이력에 한편으로 의아했다가 책을 읽고 의문이 풀렸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촘촘한 밀도는 아무나 채워넣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구나.
이 책의 주인공은 20대 청년 틸러 바드먼. 30대 여성 밸과 그의 어린 아들 빅터 주니어와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소설은 우연히 미국인 사업가이자 화학자인 퐁 로우를 만나며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으로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고스란히 '나를 찾는 과정'이 된다.
남자도, 이십 대도, 혼혈도 아닌 내가 이 소설에 자꾸만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주인공이 느끼는 결핍, 부재, 소속감 없음 등이 공통적으로 많은 이가 가지고 사는 감정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개인의 삶은 다 다르다고 해도 말이다. 어딘가 멀리 있는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늘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 그렇지만 그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겪을 방황을 대신 겪어주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주인공을 보는 게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처음 읽어본 이창래 작가의 소설은 어떤 면에서 하루키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어쩐지 지금은 하루키를 읽는 일에 큰 결심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지만, 이십 대 초반 하루키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알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오랜만에 되찾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