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나카지마 라모가 누군지, 책을 집어 들기 전까지만 해도 잘 알 수 없었다.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도 잘 알지 못한 채 선물이라는 이유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고르고 읽을 때 내가 가진 징크스는 앞부분이 술술 넘어가면 마지막 장까지 부드럽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고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읽혔다.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알코올 중독으로 겪어던 자신의 체험담을 가식 없이 토로한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중에 유명한 알코올 중독자가 몇되거니와 나카지마 라모는 스티븐 호킹과 맞대결을 시켜 보고 싶을 정도로 알코올의 길로틴 가장 깊숙한 곳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살았던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알코올 중독자들의 이미지- ‘패배자’, ‘유아적 정신’,‘나약한 의지’-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변명하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부끄러워한다거나, 면책을 위한 자신의 유아적 경험을 구질구질 내놓지도 않는다.

‘알코올 중독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알코올 중독자밖에 없다. 지옥에 발딛고 서지 않고, 지옥의 절망적 대기를 흡입하지 않은 인간이 지옥에 관해 말하는 것은 도덕적인 설교밖에 되지 않는다.’

저자는 바로 그런 발칙한 관점, 그러나 진실된 눈길로, 알코올 중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가진 자로서 인간이 어째서 무언가에 중독되며 의존하며 살아가게 되는지, 소설가의 날카로운 통찰력, 아이큐 185라고 하는 경이적인 두뇌를 가지고 열렬히 고민한다.

솔직히 요즘 소설 쉽게 쓰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간의 강둑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마치 신처럼 바라보며, 교만한 눈빛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비판 비난한다. 그들은 도덕율과 합리성을 훈장처럼 자신의 가슴에 걸고 비합리적이며 충동적인 덜 계몽된 인간들을 비난한다. 그들의 문장이 윤리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을 담보할 수는 없었다. 그 글에는 인생이라고 하는 전쟁터에서 싸워낸 상처, 미친듯이 살았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더 에누리없이 말하자면 이성이라는 엄마가 하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읊고 있는 어린 아이같다. 허위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새끈한 패션은 없다. 깨끗하게 벗어던진 삶의 누드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장이 졸렬하다든가, 거칠다든가, 전격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큐가 185란다. 출판사가 재미있는 작가의 이력이라 덧붙인 것이겠지만. 그렇게 영재로 불렸던 사람이니만큼, 스타일리쉬하며 경쾌하게 자신이 지나왔던, 아니 지나고 있는 삶을, 인생이라고 하는 기이(奇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마치 어둑한 바(bar)의 불빛 아래서 저자와 함께 버번을 들이키면서 “내가 알코올 중독이었는데 말이지.” 술에 대해, 유혹에 대해, 사랑과 친구에 대해 기나긴 수다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술이 당긴다. 이 책은 계몽적인 요소를 닮고 있지만 윤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알코올의 악마적인 유혹에 붙들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세상 그 어떤 것에 강렬하게 중독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시무시한 유혹 앞에 전면 대결을 펼치다가 쓰러지고, 진창에 나뒹굴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강추한다.

우리가 무엇에 의존되고 중독되어 있든지, 그것은 우리를 배신하고 기만하지 않던가. 술처럼 알싸한 인생의 뒷맛. 술안주처럼 쫄깃한 문장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