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사노 요코 / 을유문화사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는 게 뭐라고] 저자 사노 요코의
쓰라린 일상에 바르는 빨간약 같은 이야기들
#사노요코 #에세이 #수필집 #일상에세이 #도서협찬
유화 물감은 실로 심오한 소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유화 물감은 하루 이틀 가지고는 내가 원하는 뭔가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가도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는 식이었다. 이런 흥미로운 소재는 달리 없을지도 모르지만, 젊고 마음만 조급했던 시절에 유화 물감을 사용했더라면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단념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뻔뻔스럽게도 앞날은 짧지만, 마음은 느긋하니까 끄떡없다. 조만간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한다. P.205~206
난 일본 작가님의 책들을 참 좋아한다. 정서가 비슷해서 그런 것 같으면서도, 잠깐 살았던 추억들이 간간히 겹쳐져서 더욱 그런 듯하다.
처음 만나본 사노 요코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책 제목만 읽어도 여유로움 가득해서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실지 무척 기대하며 읽었다.
그림책을 쓰시는 작가님께서 이렇게 솔직하고 유쾌하게 글을 쓰실 수 있다니.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그리고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는데, 연륜이 묻어나는 산문집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곱씹을 수 있는 작가님의 질문들과 일상이 담겨져 있었다. 흔히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일상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며 때로는 반겨주고 때로는 슬퍼하는 감성 촉촉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어린시절의 작가님에서 아이를 키우는 작가님의 이야기까지 만나면서 쉽지 않은 삶을 조금 더 느슨하게 살아가라고 조언해주는 기분이었다.
웃음이 나올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참 많았는데, 어린 시절에 인연을 기억하지 못해 이름을 넌지시 물어보고, 까먹지 않게 위해 메모를 하고 있는데 그러고나서 더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왠지 내가 이렇게 될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망각이란 것이 어떻게 보면 참 고마울 때가 있다. 과거 이 사람과 좋은 추억이라면 그저 감사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인연을 떠올릴 때 마다 한쪽 마음이 답답하다. 이럴때 만큼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은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휴식’ 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또 이 책을 읽으면서 바쁜 일상에서 게으름은 나에게 좀 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오히려 게을러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옆집 이모가 넌지시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집을 정리하고 치운다고 내 마음속까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제의 일도 잘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바쁨이라는 쳇바퀴를 무한히 돌리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내 마음의 비움이 먼저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할까.
내가 겪었던 일상과 한번쯤 스쳐 지나간 생각들이 작가님의 풍부한 생각과 문체들로 만나다보니, 어쩌면 별 것 없는 인생을 부단히 애쓰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작가님의 질문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인간이란 정말 굉장한 존재라고 넌지시 내 마음속에 꽃 한송이를 두고 가신 것 처럼, 내 인생이 조금 화사해졌다.
벌써 고인이 되신지 12년이 흘렀다.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없지만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읽는 사노 요코 작가님의 책들은 또 더 많은 삶의 풍요로움, 너그러움을 선사해줄 것 같다.
생활이란 종잡을 수 없거늘, 그 종잡을 수 없는 것 속에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잣대로 스스로를 재면서 거의 대부분 병처럼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려고 한다. 남이 관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관리한다. p.60
나는 식당 테이블에 멍청히 앉아서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집 앞의 참억새를 바라보곤 한다. 눈썹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다. 지진이 와도 도망치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한다. 장식장 안의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생각나지만 그것들을 직각으로 정리해 놓는다 한들 내 마음이 정리되는 것도 아닌데 하며 그냥 둔다. P.61
“산다는 건 뭘까?”
“죽을 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한다는 거야. 별 대단한 거 안 해도 돼.”. p.92
아아, 영화란 그런 거야. 그떈 내가 살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초밥을 한 번 더 먹고, 프랑스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어.” 경박한 내가 깨달은 것은, 인간이 극한에 이르러서 추구하는 것은 먹을 것과, 먹을 것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문화라는 것이었다. ‘몸과 정신’ 이라는 건가. p.126
나는 다섯 살 아들을 보는 것으로 다섯 살의 나를 한번 더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열세 살의 아들을 통해서는 더 이상 열세 살의 삶을 살 수 없다. (생략)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아이 따위는 없다. 아이인 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다. 아이인 척하며 아이의 권력을 휘두르지 마라. 나도 어머니인 척하는 거 힘드니까 말이야. 나도 열세 살의 소녀였던 적이 있으니까 말이야. p.201
베를린에서 코펜하겐으로 기차여행을 갔던 작가님. 좋아하는 안데르센이 태어난 동네를 데리고 갔으나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이틀 내내 여관에서 잠만 잤고, 벽지만 기억하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참 왠지 모르게 여운이 남는다. 마냥 화려한 매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p.227
<이 도서는 해당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