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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세계사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우연히 미용실에서 발견한 잡지 [여성동아] 장편소설 모집에 공모하게 되어 40대의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다. 밤에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정겹게 들으며 자그마한 불을 통해 쓰는 글이 더 좋다고 할만큼 소박하시며 겸손하신 작가님의 인생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읽을 때마다 노년의 삶이 다가오는 친정엄마가 생각이 났고, 돌아가신 할머니도 많이 떠올렸다.
총 35개의 장편소설에서 산문 한편씩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여우눈에디션 처럼 겨울에 어울리는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읽을때마다 만나는 그림들도 참 예뻤고, 아름답고 따뜻한 작가님의 문체들이 북커버처럼 빛이 나는 듯 하다.
마치 마스다미리 작가님이 연상이 되지만, 성숙한 노년의 이야기를 만나 더 차분하게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천천히 한편씩 곱씹어 읽다보면, 내가 이렇게 무언가에 겸손해지지 못하고 별 것 아닌것에 슬퍼하거나 힘들어하던 내 자신을 마주보게 되니 부끄럽게 느껴진다.
70년이란 긴 세월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덤덤하게 차분하게 써내려 간 이야기들이 주는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추운 겨울에 이 책이 어울리는 건 아마도 작가님의 힘들었던 긴 삶속에서도 더 행복한 것을 바라보고 싶다는 희망과 내 등을 지긋이 눌러주듯 따뜻함을 건네주셨기 때문이 아닐까.
평생을 이 책과 함께 나이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나도 작가님의 다짐처럼 노년이 되어 명절에 만나는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만나면 직장과 학교, 성적을 묻는 대신 얼마나 건강한지, 매해 키를 재면서 누가 잘 컸는지 칭찬해주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
어느 단편을 읽어도 가슴을 울리는 잔잔한 여운과 메세지가 담겨있어 손에 꼽을 수가 없었던 책이다. 올 겨울에 어울리는 고)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 정말 추천합니다.
조금 덜 바빠져야겠다. 너무 한가해 밤이나 낮이나 꿈만 꾸게는 말고, 가끔가끔 단꿈을 즐길 수 있을 만큼 한가하고 싶다. p.67
다행히 집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요새 같은 장마철엔 제법 콸콸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보통 때는 귀 기울여야 그 졸졸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낙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P.111
인생도 등산이나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은 길고, 절정의 입지는 좁고 누리는 시간도 순간적이니까요. 이왕이면 과정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생은 결국 과정의 연속일 뿐 결말이 있는 게 아닙니다. 과정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 가족이나 친척 친구 이웃 등 만나는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입니다. P.138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P.216
계절의 변화에 신선한 감동으로 반응하고, 남자를 이해관계 없이 무분별하게 사랑하고 할 수 있는 앳된 시절을 어른들은 흔히 철이 없다고 걱정하려고 든다. 아아, 철없는 시절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p.28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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