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제인 수 지음, 임정아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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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제인 수

라이프앤페이지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어른이라도 아이의 흔적은 남아 있다.

지키고 싶은 순간과 일상의 이야기들




 

 

 

며칠 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가면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내 뒤에서 쌩하니 보드를 타고 앞을 지나가는 나보다 나이 있어보이는 한 남자. 뭐라고 하는거 같았는데 내 옆에서 들어보니“앞에 아줌마 잠깐 비켜주세요.”를 무한반복 한 것 같았다. 내 음악소리에 누가 뭐라하는지 들리지 않았으니 당연히 비켜주지 않았지만, 안비켜줘서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다. 장바구니를 이고지고 가니 아줌마로 당연하게 생각할테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되었기에 그 말을 들어도 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 사실 들어본적이 거의 없던 것도 있었다. 

(애엄마 소리륻 더 들었을테니.)

기분 나쁜건 사람이 걷는 인도로 보드가 쌩하니 지나가면서 갈거니까 비켜달라고 뻔뻔하게 뒤에서 소리를 치는 것. 그리고 ‘아줌마니까.’ 라는 생각으로 당연시하게 말하는 무례함이 싫었다.

결국 내 앞에 사람이 많았는지, 본인의 형편없는 실력을 알았는지 차도로 내려가서 정말 형편없이 달려나갔다. ‘연습은 공원에서 하세요! 인도는 보드타는 곳 아니거든요.’ 하고 한마디 하고 싶었던 며칠 전 이야기.

 

그렇다. 그렇게 나도 나이가 들어 어느덧 두아이 엄마가 되어 아줌마라는 호칭을 얻게 되고 약간의 억척스러움도 생겼다. 좀 뻔뻔해질 필요성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잘 해주지 않아야 내가 손해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별별 사람을 만나게 되다보니  아줌마가 되어 강해진 건 아닐까.

 


 

이 책은 소녀와 노인의 사이. 마흔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노안이 시작됨을 인지하고, 배꼽까지 확실히 가리는 복대 바지를 입는 작가님의 40대 이야기다.

 

제목만 읽었을 때는 '왠지 차분하게 진지한 불혹을 이야기하겠구나.' 싶었는데 반전이었다.  마치 마스다미리 작가님을 연상케 할만큼 유쾌하며 엉뚱하며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는내내 즐거움이 번졌다.

여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 고민, 기혼자, 미혼자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만나볼 수 있어서 무척 공감되었다.

한번에 다 읽기 아쉬워 조금씩 틈나는대로 읽다보니 어느새 완독해버렸다는 사실.

 

가장 나 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터득해보고 싶지만,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이 달려온 매해.

힘들었지만 한해를 무사히 잘 보낸 나에게 나를 위한 선물을 하고, 무얼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이불속에 며칠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마음을 지니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들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는 작은 사치를 귀엽게 봐주길 바란다.

 

우리들은 어린시절 공부와 씨름하고, 성인이 되어 연애와 일에 바쁘게 살며 나를 챙길 여유를 망각하며 살았는지.. 그렇게 30대를 거쳐 순식간에 40대를 맞이한다.

몸의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는데 그 불안감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다. 예뻐지고 싶은 마음에서 이제는 건강하기만 바라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위한 준비일까.

아줌마가 되어도 실수하면, 어린아이처럼 “괜찮아, 힘들었지?” 하며 따스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 작가님의 한문장 한문장이 뭉클해졌다.

 

 

 



 

 

 

나이가 들면, 몸뿐만 아니라 생각도 서서히 퇴화되는 기분이 든다. 의식하듯 젊은 세대들과 차이나지 않게 무엇이든 교류하려고 노력해야하는 세대가 40대부터일까?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라떼’를 들먹이며‘요즘 MZ세대들은 너무 의욕이 없다.’며 고리타분한 말을 하는 중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도 그런 어른들에게 핀잔을 들으며 자라왔는데 우리도 그렇게 젊은세대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나도 작가님처럼 현역에 머무를 수 있도록 업데이트를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임펙트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따스한 위로를 건네주는 모든 여성을 위한 선물같은 책. 몇년 뒤면 40대. 내나이를 잊을만큼 육아로 바쁘게 살아갈테지만 이만큼 잘 살아왔으니 40대도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 처해져 있는 삶에서도 나 잘 살고 있다고 응원해줄 수 있기를!

 

그러니 우리, 괜찮은 거다!

 

 

 

* 계속 태양을 떠오르게 하려면 옛날을 그리워하거나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에 어렴풋한 불안을 느낄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확실히 즐길 줄 아는 담력이 필요하다.     (p.23)

 

 

* 먹고 싶은 것을 사는 데 돈이 부족했던 시절이 그립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었던 시절도 그립다. 결국은 지금 이 시절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늦여름은 나에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p.50)

 

 

 

* “이것을 맨눈으로 볼 수 없게 된다면 이 일은 끝이야.” 그렇게 웃는 선배 아나운서에게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돋보기안경을 쓴 여자 아나운서의 등장이야말로 여자 아나운서의 승리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젊음과 서투름으로 상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돋보기를 쓴 모습이 충분히 이야기해줄 것이다.    (p.142)

 

* 이유도 없이 비참함으로 불쾌할 때는, 어른이라도 깜짝 놀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어른은 깜짝 놀라는 정도로는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니 불쾌해지는 수밖에 없다. 어른이라도 아이의 흔적은 남아 있다. 누군가가 안심시켜주거나 등을 두드려주기를 바라는 때가 있는 법이다.    (p.202)

 

 

 

 

 

(이 도서는 해당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솔직하게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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