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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창비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만났다. 꽤나 두꺼운 책 제목은 가볍지 않은 그 이름. 아버지였다.
나에게 아버지란.. 이란 생각으로 서평을 신청하게 되었다.
J시라는 도시에서 만난 신경숙 작가님과 아버지의 이야기는 일제감정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름만 들어도 참옥한 일제강점기 시대. 그리고 6.25 전쟁.
이 당시 아버지라는 사람은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받쳤다. 작가님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다.
위로 형이 셋, 누나가 둘이 있었고 여섯째였으나 그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으로 형 셋을 잃고 장남이 되고 만다. 그것도 종가의 장남. 한의사였던 조부는 한꺼번에 세 아들을 잃고 두려움에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고, 곁에서 소학을 가르치고 명시보감을 외우게 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열네살. 큰아버지 댁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그만 전염병에 걸려 이틀 간격으로 양부모를 잃고 만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비극적인 아버지의 어린시절이었다. 학교도 갈 수 없고 소 한마리로 논에서 일을 하며 아버지로 살아온 인생.
아픈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진료를 받는 그 사이 작가님이 홀로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읽으면서 작가님의 상황도 너무 안타깝고 인생이란 무엇을 우리가 알기 위해 걸어오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어렵게 마음을 잡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가슴깊이 통감할 순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집중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헤어짐의 인사라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도 힘들지 않았을 인생.
사람의 인생이 이런 것이었다. 누구는 말마따나 금수저로 태어나, 은수저로 태어나 어려움없이 성장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뼈속까지 아픔을 느끼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런게 인간의 삶이라고 한다면 누가 그런 삶을 살아갈까..
작가님의 아버지의 대사가 떠오른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p.90)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붙잡지도 말고 흘러라게 놔두라고 해서. (p..90)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홀로 계실 땐 이것 저것 택배를 가득 시켜 몰래 창고에 숨겨두셨다는 아버님의 일화가 잊을 수 없다. 화려한 젊은 인생 뒤에 찾아온 노인에게는 외로움은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밤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홈쇼핑을 보며 전화를 할 상대를 찾았다는 것이 어찌나 슬펐던지 모른다.
화려했던 젊은 시절의 내가 나이가 들면 시들어 버리는 것 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이렇게 나이가 먹으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었다. 누군가와 마주할 상대가 없어 어떻게서든 전화를 들어 맗 한마디 할 수 있음에 주문을 건 아버지의 노년의 인생을 바라보니 내 부모님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파왔다.
조금만 자신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남은 자식들은 "가시는 길은 행복하시겠지." 라고 위안을 삼고 떠나보낼 수 있을텐데.. 그럴 수 없는 것도 인생인가 싶었다.
그 시대에 살아온 우리 어르신들의 인생은 너무나 거칠고 쓰라려서 그렇게 꽃을 한없이 바라보며 아름답다 말하는 것일까.
피고 지는 화려한 꽃과 같은 인생.
책을 다 읽어갈 쯤에 , 작가님의 아버지의 잘라진 검지손가락을 떠올리며 , 그동안의 아픔을 잘 견뎌주셨다고 감사하다고 안아드리고 싶어졌다.
밤마다 주무시면서 악몽꾸시고 몽유병처럼 새벽에 깨어 잠자리에 드시지 못하는 그 아버지를 나도 어린 자녀처럼 달래드리고 싶었다.
작가님의 가족들이 전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빼곡하게 담겨져 있어 눈물샘이 마르지 못했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를 키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좋지못해 큰 아픔으로 다가와 멸시하고 미워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자식은 그런 것인가 싶어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
작가님의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실까.....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그 이후의 소식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그저 안부를 드리고 싶은 밤이다.
바람 속에서 내게 전달돼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는 좋았다. 언제까지나아버지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꽉 잡아라, 라고 말해줄 줄 알았으니까, (p.32)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p.60)
가끔 그때 생각을 하오. 인생은 모를 일이라 전쟁이 나지 않았다고 해도 또다른 일에 쓸려서 상상도 못 할 어디로 흘러들었을지도 모르지. 지금 모습은 아니겠지. (p.306)
세상의 기준은 이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소. 필요에 따라 변화하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니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p.312)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간 아닌가. (p.323)
오래 슬퍼하지는 말라어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p.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