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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위험해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문근영이 위험하다고? 왜?
대충 책장을 넘겨보니, 노란색 각주 박스가 만화책의 말풍선처럼 들어가 있다.
옹, 이게 뭥미? 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
우왕 ㅋ 굳 ㅋ.. 완전 웃기고 새로운 소설이 나타났다...!!
이 작품은 '회사'의 음모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세 얼간이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문근영이 위험한 이유는 '회사'가 텔레비전 속의 문근영을 이용해 사람들을 세뇌해 살인자(파괴자)가 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문근영을 쓰고 난 후 '회사'는 가차없이 문근영을 폐기처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근영을 납치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음모론적인 시각은 모든 현상을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일면이 담겨 있어 씁쓸하기도 하고, 그 논리가 황당하지만 설득력 있어 매우 재미있다.
오다쿠적이고, 스토커적이고, 음모론주의자인 세 명의 비호감 캐릭터들은, 인터넷 폐인이었던 나 자신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만나 함께 웃고 분노했던 인터넷 친구 같다. 아마 디시인사이드나 웃긴 대학, 루리웹 같은 인터넷 사이트나 b급 영화, 병맛 웹툰 등의 세계에 빠진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들 주인공들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근영 납치로부터 지구 멸망, 수만 년 뒤 외계인의 우주선으로 이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한 스토리 는 몰입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 또한 흥미롭다. 반전을 거듭할수록 작품의 중의적 해석의 여지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그 의미 파악을 하기는 쉽지 않은 소설이다. 유치찬란한 병맛(?) 소설 같지만, 그 이면을 잘 들여다보면 소비 자본주의 발달사와 아이돌 붐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유럽발 금융위기, 가카의 꼼수까지 다루고 있다!! 한축으론 나꼼수 소설 버전처럼 패러디와 풍자를 통해 한국사회를 조롱하고 있으면서, 또 한축으론 소비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를 통찰하고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이제껫 한국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작품 시작 전에 자막을 삽입하고, 부 사이에는 전편 요약과 다음 편 예고를 넣었다. 빈페이지에는 심지어 광고를 넣었다. 소설인데 각주가 더 재미있으려고 한다. 사실 각주가 많아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각주가 아주 기지 넘치고, 컬쳐비평이라 할 정도로 안목도 있어서 매우 재미있다. 주요 대사는 디시 폐인처럼 인터넷 유행어나 광고의 패러디다.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그려내기 위해 그러한 시도를 했단다. 뭐랄까? 작가가 이 작품을 가지고 마음껏 실험하고 즐거운 창작 요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창작의 즐거움이 느껴지고, 또 그러한 즐거움이 독자에게도 전염되는 소설이다.
처음에 읽어나가면서,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가 왜 이렇게 만화 같은 소설을 썼을까 궁금했는데, 다 읽고 나니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다. 이 작품은 엉성한 서사구조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치밀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병맛풍 스토리 뒤에 작가의 치밀한 의도를 감추고 있는 진지한 문학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