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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잃은 날부터
최인석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한 남자가 있다. 세상에는 온통 의미없고 가짜인 것들만 가득하다고 여기는 남자, 사람들은 철저한 욕망의 논리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덧없는 시스템에 길들여져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노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그리하여 세상에 무관심한 남자.
그리고 한 여자가 있다. 빚을 내서라도 최고급 가전제품에 명품들을 사들이는 쇼핑 중독인 여자, 홈쇼핑채널의 쇼 호스트로서 스스로 상품의 일부가 되어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여자, 어떻게든 배우로 성공하려고 자신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기꺼이 성상납을 하는 여자, 그런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자.
남자는 여자를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고 점점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와 동거를 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가게 되면서 그는 갈등하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는 욕망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를 구출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 냉혹하고 비정한 자본주의적 욕망 시스템으로부터 그녀를 구출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사회를 부숴야 하나? 폭탄이라도 던져서 이 세상을 날려버려야 하는 것인가?
추악하게 일그러진 괴물 같은 이 세상에 대해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나는 최인석 작가가 선택한 결론이 사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걸 느낀다. 진정 좌절의 끝까지 가지 않고서는 결코 승복할 수 없는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좌절의 끝이라는 건 세상이나 타인을 향한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해 있기에 가능하다. 자신 또한 괴물과 다르지 않다는 발견, 그 좌절 속에서야 비로소 싸움을 멈출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지, 사랑을 지켜낸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