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정원 -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김용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에 문학이나 영화를 재료로 사용하고 '철학'을 주 요리법으로 선택하여

먹기 편하게 요리된 책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철학 정원'(이하 '정원)이고,

또 한 권은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이하 '카페')이다.

둘다 무척 흡족했고,
저자가 다른 책을 낸다면 그 책도 사 볼 것 같다.








책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정원'을 읽으면서는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다.

문학이나 영화의 원전에 대한 해석이나 평을 다룬 이런 류의 책을

내 딴에는 '독후감책'이라고 부르는데,

그리고 '독후감책'을 별로 즐기지도 않는데,

'정원'은 참 즐거웠다.

저자의 신선하면서도 명확한 해석 때문이리라.

아마 나는

어떤 책을 읽으면서도 뭔가 가슴에 맴맴 도는 생각들은 있지만

그것을 언어화시키지 못해 답답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선명하게 언어화되어 있어서 속이 시원했던 모양이다.

예를 들면,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1)도킨슨의 이론은 세상이 호들갑 떨 정도로 굉장히 새롭고 도발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다윈 이론을 개체 입장에서가 아니라 유전자 입장에서 본 견해일 뿐이라는 것.

(2)환원주의가 가진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얻어진 결론을 유일한 결론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

이라고 강조했다. 나로서는 하고 싶던 말이라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저자가 상식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도 만들었던 대목이다.^^




또  이 책은

문학 뿐만 아니라, 철학 고전이나 과학 고전, 영화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진 동화까지도

요리 재료로 다루었는데, 썩 먹을만했다.

평범해 보이는 재료로 썩 먹을만하게 만들어진 요리가 주는 감동^^

'어린 왕자'의 '길들임'을 예로 들어보자면,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을 가르치는 여우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 아닌가.




저자의 말을 잠깐 인용




 

"참을성이 있어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 이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너를 흘끔흘끔 곁눈질해 볼 거야.....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다가 아무 간격 없이 붙어 앉게 되면 길들이기는 완성된다. 이 완성의 단계가 뜻하는 건,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두 존재 사이에 어떤 매체(media)도 끼어들거나 매개하지 않는 즉각적이고 비매개적인 관계이다. 여우는 육성언어의 미디어조차 거부한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체의 미디어를 거부하는 것이다. (66쪽)

 




이 '매개'와 '비매개적 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 media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유로운가? 하는 의문들을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정원'을 읽다가

내가 읽지 않는 책이나, 보지 않았던 영화를 다룬 부분 몇 개는

다음을 기약한 채, 읽지 않고 건너뛰었다.

저자의 목소리가 너무 강렬한지라, 인상 깊어서

나의 독서 전에 선입견으로 남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겨서였다.


내가 먼저 읽지 않으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이에 반해, '카페'는 조금 더 편하게 읽힌다.

이미 원전을 읽은 사람은 좀 지루하게도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원전 내용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반대로 생각하면, 원전을 읽지 않은 사람도 편하게 접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못했는데,

두려움없이 김용규의 해석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의문을 한번 더 던진다.




요즘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서 부쩍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어떤 저자들은 '우와~ 똑똑하다'라는 느낌만 주는데 비해,

어떤 저자들은 '똑똑할 뿐만 아니라, 따뜻하기도 하다니...'라는 인상을 풍기냐는 것이다.

도대체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대다수의 저자들이 전자이고, 후자의 저자들은 드물다.

'카페'의 저자 김용규 씨는 드문 인상을 가졌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박식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요리 방법이 무척 훌륭하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저자의 박식함 때문에 독자가 주눅들지 않는다.

단골 커피집의 바리스타처럼 존경스러우면서도 편하다.

문체는 곧 사람됨이라 하지만,

도대체 구체적으로 글의 어떤 점이 그런 차이점을 생겨나게 하는 것일까.

문득 그것이 궁금하다.  단지 문체 때문일까??

차차 탐구해보기로 한다.







두 책 모두 아주 좋은 인상으로 남았는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렇다.

'정원'은 읽고 나서 주눅이 좀 들었다면

(거기에서 다룬 책들을 읽고, 내가 저자보다

더 멋진(?) 해석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카페'는 읽고 나서 용기를 좀 얻었다. ^^

(나도 결국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구나라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협객 2009-06-1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저두 카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뒤로 이런 철학책을 보면 좋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보고 있는데 위의 예를 드신 말이 참 가슴에 와닿네요. ^^;
저두 주눅든 책들만 보고 와서인지..... 일단 보관하기에 담아 둡니다. ^^;

알수없어요 2009-06-1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따뜻한 작가들이 많아지도록 주눅들지 말고 책 읽어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