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술에 대한 일단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책- 화인열전

화인열전 1 (반양장) -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연담 김명국과 오원 장승업, 조선 시대를 통틀어 신필이라 불릴 만한 두 명의 화인이라 한다. 천재성과 기존의 격식을 뛰어넘는 파격이 뒷받침되어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이에게 붙여지는 신필이란 칭호를 받은 두 사람은 우리에게 얼마나 친숙한가. 얼마전 취화선이란 영화의 흥행으로 장승업이란 천재적 인물의 존재 정도가 알려졌을까, 조선 시대의 많은 천재적인 화가들과 그들의 걸작들은 우리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듯하다. 굳이 우리의 교육 과정을 문제삼기 이전에 우리의 찬란한 문화에 대한 무관심이 일차적인 문제가 아닐까 한다.

<화인열전>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을 말하라면 나는 자신 있게 우리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어떤 위대한 화가가 어떤 환경에서 존재했었는가에 대한 지식도 지식이지만, 충실히 삽입된 컬러 도판에 도움을 받아 많은 작품을 접하면서 그 자체로 그것들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인물이 실재했던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인물 주위의 인간 관계까지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된 작품에 대한 작가의 감상 또한 내가 우리 미술에 다가서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토록 위대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우리 미술이 너무 자랑스럽고, 그것을 창조해 낸 그들의 존재가 진정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저자는 특히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에 관한 자료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작품이 많이 남아 있고 그를 바탕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겸재 정선은 한국의 산수화에서 진경 산수화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선구자로서의 수식어를 뺀다 해도 충분히 훌륭하다. 특히 내겐 그의 말년 작품이라는 그림들이 인상적인데, '인왕제색도' 와 ' 박연폭도' 는 미술에 거의 문외한인 내게도 최고로 보인다. 거대함을 시원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지루하지 않다.

조선 시대에는 화원이란 직업이 매우 천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많은 위대한 선비 화가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겸재 정선과 같이 본래 양반의 신분임에도 화인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 세계 완성을 위해 매진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관아재 조영석과 같이 양반의 체모를 무엇보다도 중시하여, 자신의 재능을 '그림을 좋아하는 병' 이라 칭하며 화인이라 불리지 않기 위해 작품 활동을 조심히 했던 인물도 있었나 보다.

하지만 어느 편이든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주변의 사물들부터 시작하여 삶의 모습들, 그리고 자연에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고, 자신만의 해석을 가하여 그려냈다. 그 성과물들은 그 자체로의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들이 주변에 대해 가졌던 애정과 관심은 걸작이 탄생할 수 있는 근원임과 동시에 후대에 그 작품들의 가치를 더해주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모든 영역의 정보들을 편리하고 공평하게 접하지만, 이상하게 유독 미술만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미술을 감상하는 것은 고급스런 취미이자 능력으로, 감상을 넘어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 그렇지 않다. 유흥준 교수의 < 화인열전 > 은 이런 우리 시대의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많은 자료들로 그 그림과 화가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그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명작은 굳이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훌륭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작품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고, 또 그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외세를 빼고 우리 역사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1
한국역사연구회 / 역사비평사 / 1998년 11월

19세기 말 한국 사회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부분에 걸쳐 커다란 변동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확실히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힘찬 움직임이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는 사회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이 시기,19C 후반부터 100여년 간의 우리 민족의 삶을 다양한 방향에서 다루고 있다.

3권에 걸쳐 제시되는 한국의 근대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역사 속의 외세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근대화는 물론 전반적인 사회 변동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은 결정적 조건이 외부에 있었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내재적이며 자율적인 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개항이 일본의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그 후의 개화 과정에서도 외세의 절대적인 영향이 작용하였던 점이 그것이다.

일제에 의한 근대화를 논하면서 외세에 의한 피동성을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태초부터 다른 나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왔고, 대부분을 극복해 냈지만 그런 역사적 경험에 의한 영향은 지금까지도 막대하다.역사적 주체로서의 의식 결여로 인해 결정적으로 한국이 스스로 개항, 개화를 추진하지 못한 것은 그 후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화라는 국제 환경적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연 외세로부터 자유로운가. 다른 나라와의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에 앞선 우리의 주체성의 문제다. 역사 주체로서의 주체성을 논하기 위해 우리 근대화에 대한 재검토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900년대의 사회상을 다방면에서 짚어 본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다소 지루하더라도 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고려 시대를 돌이켜보는 것은 역사 공부라는 차원을 넘어선 의미가 있다

5백 년 고려사
박종기 지음 / 푸른역사 / 1999년 10월

한마디로 고려라는 사회에 자체적으로 접근하려는 시각이 참신하다. 저자는 '아마도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역사책은 국사책일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사 교과서를 자신이 읽은 마지막 역사책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서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차원에서 이 책은 소소한 텍스트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충분히 제시함으로써 조금 다른 입장에서 고려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일반인들의 고려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기에 고려 왕조의 역사적 사건을 통일 신라 및 조선 왕조의 사건과 비교 서술해 고려 사회의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교과서와 같은 딱딱한 서술 방식이 아닌 강의하는 듯 풀어 쓴 서술 덕분에 책을 읽는 데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 책의 앞 부분에 고려의 무인 쿠데타를 설명하면서 현대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도록 1970-80년대의 군부 독재 시절의 사진을 덧붙이는 것과 같은 저자의 사소한 배려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사를 왜 연구해야 하는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우리에게 역사가 단순히 ‘골동품'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과거의 여러 사실 가운데 오늘날 의미있는 사실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 철저하게 서서, 삼국시대나 조선왕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고려사 475년에 대해 독자가 고려를 느낄 수 있게 서술하는 데 충실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혹은 사고의 방향과 폭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바뀌었는가는 모르겠다. 애초에 고려에 대해서 지식이 풍부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 단 몇 권의 책으로 인해 변화하기에는 인식의 틀이 어느 정도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가, 혹은 역사적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역사는 역사가 자신의 해석의 역사'라는 고전적 명제의 당위성이 새삼 느껴진다.

그리고 시험을 보기 위해 암기한 단순 지식으로서의 화석화된 역사는 아무 쓸모 없음을 , 무슨 일을 하든 마찬가지지만 자신이 아는 만큼 보고 느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내 나름의 가치관으로 고려 왕조 자체와 그 시대의 주변 상황을 소화해 낼 수 있기 위해, 나아가 한국사를 정립된 시각으로 통찰할 수 있기 위해 좀더 폭넓은 지식과 안목을 지녀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만리 장성을 보더라도 수많은 돌이 쌓인 단순한 돌담으로 인식하기 보다 엄청난 인력이 동원된 권력의 산물임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고려에 대해 그런 안목을 지닐 수 있도록 디딤돌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