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생존 경쟁과 우승열패진화론을 응용한 것이며 인종 퇴화의 공포와 함께 인종의 서열이나 차빛과 구별되지 않은 채 형성되었다. 신무 천황의 신화를 본받은 황제신화 그리고 황화론에 대한 반발도 황인종 의식의 강화와 연관되어있다.
신무 천황의 신화를 본받은 황제신화 그리고 황화론에 대한 반발도 황인종 의식의 강화와 연관되어있다. 당시 낙관적 진화론을 비판하고, 강국의 애국 내셔널리즘의 위험한 측면을 깨달았던 장빙린의 경우에도, 주변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강국의 내셔널리즘과 같은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
침략 전쟁에 저항할만한 근거가 되었던 성질의 것에서조차도 그랬던 것이다. 민족주의는민족과 국가의 통합에 불가결한 것이었기에 자칫하면 신성화되기 쉽다. 통합이 타자(대부분 소수자)의 배제와 도태에 의해 성립하는 이상, 배제된 자는 통합하는 민족주의와 결국 충돌하게 될 것이다. 한 번은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신성한 민족주의는 어떠한 의미에서도항상 이데올로기적인 근대의 신화일 수밖에 없다.
세기말 영국에서 비롯된 우생학이 문명화한 인간의 퇴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면, 옌푸의 경우는 이러한 진화론적 인종관과 열강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가운데 문명화의 지체에 의한 퇴화의공포 속에서 우생학을 받아들이고 있다. 구미 유학 경험이 있고 영어에 능통하며 중국의 지체를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던 옌푸로서는 ‘최신의 학문인 우생학을 아마도 영국으로부터 직접 받아들였을 것이다.
5.4 윤리 혁명에서 비판의 눈이 가부장제로 쏠리면서 유교적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도 처음으로 중상을 입게 되었다. 국민 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일어난 이 흐름 속에서 연애에서부터 부부 · 가정의 존재 형태, 여성 해방 운동이라 할 수 있는 젠더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였다. 또 이와 관련하여 인구 문제. 산아 제한 문제도 부각되었고, 그러자 위생이나 생식에 이르는 의학 문제도 친근하게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과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 우생학은 초기단계에서는 역시 주로 일본을 경유하여, 새롭게 그 언설상의 위치를구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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