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글은 어떤 형태로든 자전적 성격을 짙게 띠지만, 그 구절이 문학적으로 자전적 성격을 띠든않든 간에 에이헨바움의 견해는 대체로 타당해 보인다.
톨스토이는 본래 몽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각양각색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사물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았다.
거기에서 개별적인 본질을 찾아내려 애썼고, 본질적인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요인을 명쾌하게 포착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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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설이 맞다면 여성은 약삭빠른 계산가이다. 하지만 여성의교활함을 부정하는 가설, 오히려 어리석은 경우가 여성에게 더 유리하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달리 말하면, 배란기를 모르는 여성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기회를 더 많이 가졌을 것이란 가설이다. 똑똑한 여자는 성교와 임신 간의 관계를 일찌감치 파악해 임신의 불편함을 줄이려고 임신 가능 기간(정기)에는 성교를 피했을 것이기 때문에, 자연선택으로 똑똑한 여자는 도태되고 어리석은 여자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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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배움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배움은 상투적인 개념으로 파악되지 않는 감각, 기존의 재현 체계가 담아낼 수 없는 차이적인감각을 신체에 발생시킴으로써 새로운 사유 방식, 새로운 표현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들뢰즈의 배움론에 비춰볼 때, 우리의 학교교육에서 감각이 활용되는 방식은 매우 반(反)들뢰즈적이다. 학교교육에서 감각은
‘공감‘의 활용으로 제한된다. 교사는 사과를 가져다 놓고 색, 모양, 크기, 표면의 상태 등을 묻는다. 모든 학생은 공통적으로 빨간색, 동그란모양, 주먹만한 크기, 매끄럽고 딱딱함 등을 감각해야 하고, 보라색, 다이아몬드 모양, 수박만한 크기, 거칠고 물컹거림을 감각한다면 잘못감지한 것이다. 심지어 사과를 보고 먹음직스럽다는 느낌까지도 공유해야 하는 억지스러운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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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아이의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글쓰기는 아무런 효과도 없을뿐만아니라 오히려아이의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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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많은 이들이 주님을 너무 ‘조심스럽게‘ 대함으로 기도를 망친다.
우리는 그 대가가 적당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이해를 가지고 구한다. 우리는 기도응답으로 무엇이 더해지길 원하지. 어떤 것이 없어지길 원하지않으며, 적당한 선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편의에 맞춰주시기를 원한다. 그래서 모든 기도에 단서를 덧붙여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 없게 만든다.
성공적인 기도는 조건이 없는 기도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해치실 수 없고, 반드시 우리에게 도움을주신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을 담대히 구하며, 대가는 개의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과 지혜로 우리에게 무엇을 부과하시든 기쁨으로받아들이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기도는응답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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