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기분 좋게 그저 거기에서 잠시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 은밀한 기척, 책들이 만드는 음울함의 깊이, 모든 통로에 그 기척이 가득하니 고요할 수밖에 없다.
종이와 잉크 냄새가 나는, 그립고 그윽한 고요함이다.'
p88
서점에 얌전히 꽂힌 책을 표현한 은밀한 기척, 음울함의 깊이, 그립고 그윽한 고요함.
어쩌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직접적이지 않지만 읽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오게 되는.
이래서 다들 에쿠니 가오리에게 빠져드나 보다.
이런 글은 작가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책의 소제목처럼 그녀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읽고, 그녀의 주변은 어떤지 말이다.
기록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은 고요하고 청아한 에쿠니의 글을 만나는 시간이 참 좋았다.
'글자에는 질량이 있어, 글자를 쓰면 내게 그 잘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린다.
가령 내가 안녕이라고 쓰면, 안녕이라는 두 글자만큼의 구멍이 내게 뚫려서,
그때껏 닫혀 있던 나의 안쪽이 바깥과 이어진다.'
글을 통해 작가의 세계와 독자가 이어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