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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1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평점 :
'도가니'라는 소설이 이 사회를 휩쓸고 간지 10년.
침묵은 죄라는, 진실은 느리다는 작가의 말이 아직도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어린 시절 신부에게 당했던 성추행을 비밀로 간직하며 서울로 떠나버린 이나. 엄마의 암으로 인해 안개 자욱한 도시 무진을 다시 찾은 이나는 그곳에서 그녀의 인생이 짙은 안개에 휩싸여버린다.
어린 시절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학대하는 오빠를 두었던 불쌍했지만 당돌했던 그리고 조금은 뻔뻔했던 아이 해리. 그리고 이나를 성추행했던 양의 탈을 쓴 뻔뻔한 신부 백진우.
완전한 어른이 되어 무진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너무도 놀랍게 변해있었다.
불우했을지 모르지만 나이 든 아저씨에게 당돌하게 성적 어필을 하며 낄낄거리던 해리는 아이를 홀로 키우며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한국의 마더 테레사가 되어있고, 성령의 명령이라며 헛소리를 지껄이며 순진한 여학생을 추행하던 백진우신부는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진정한 신부님이 되어있었다.
진보와 민주화라는 두 단어.
거기다 종교적인 권위와 정당성까지 합해지고 나니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어진다.
백진우와 해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니 보통의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일들을 벌이며 돈을 끌어모은다. 이들은 SNS라는 수단을 이용해 대중들을 선동하는 방법을 알았다.
특히 전능자인 하나님을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의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백신부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
거기다 거침없는 몰상식으로 정말 숨 쉬는 것조차 거짓인 것 같은 여자 해리의 모습은 읽는 내내 그래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이다 하며 진정이 필요할 정도였다.
책 속 등장하는 수많은 억울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그들은 조금의 흠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고 결국은 그 틈을 교묘히 파고든 악녀 해리에게 모든 걸 뺏긴다. 예쁜 얼굴과 쭉 뻗은 다리를 가지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봉침 한 대면 만사가 오케이 되던 여자 해리. 하지만 그런 교활한 여자도 결국엔 사라지고 소설 속 최후의 승자는 백 신부이던가?
인간이 얼마큼 교활할 수 있는지 그 끝을 보여준 백진우는 대중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흔들리는지 알았다. 대중의 심리를 읽고 마지막까지 쥐고 흔든 그는 소설 속 최고의 악인이 아닌가 싶다.
이나와 같이 진실을 밝히는 또 하나의 인물인 변호사 강철과 반가운 얼굴의 서유진. 도가니 속 정의편이었던 서유진은 이젠 이나에게 아줌마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약자의 편에서 두발로 뛰고 있었다. 변치 않은 그녀의 모습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책 속은 조금은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페북 화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또 채팅창을 보여줘 좀 더 실감 나는 대화를 보여준다. 이렇듯 새로운 시도는 인터넷에 익숙한 요즘의 독자들에게 좀 더 몰입감을 주고 속도감을 준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이런 암울하고 서글픈 이야기의 마지막을 로맨스로 끝냈다는 것. 조금은 어울리지 않은 이 마무리가 난 참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