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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큐레이터 - 박물관으로 출근합니다
정명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11월
평점 :
나는 역사책과 역사 드라마에 흥미가 많았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다 과거의 신기한 물건이 등장하면 인터넷에 검색을 하곤 했는데 유물이 실린 사진에는 어김없이 무슨무슨 박물관 소장품 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박물관은 내게 그저 오래된 물건을 보관, 전시하는 장소였다. 그 물건을 박물관에서 전시, 보관,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내게는 그 사람들의 존재가 그저 희미했다. 그리고 만난 책이 <한번쯤, 큐레이터>였다.
p.18 큐레이터는 유물 앞에 서 있을 이를 상상한다. 서두를 일 없는 여유로운 걸음도, 빠른 보폭의 발소리도 떠올려본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 누구도 같을 수 없는 인생의 스토리에서 어떤 큐레이팅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본다.
<한번쯤, 큐레이터>의 정명희 작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쓴 글을 읽는 것은 즐겁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번쯤, 큐레이터>는 특히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박물관 속의 사람이었으니 더욱 기대가 컸다. 정명희 큐레이터가 알려주는 박물관은 내가 그렇게 박물관을 검색하면서도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박물관의 이야기였지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특히 <한번쯤, 큐레이터>의 두번째 파트인 '시간 여행자를 위한 큐레이팅'에서는 박물관에 유물이 전시되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마구 흥분되었다.
p.113 기획안이 통과된 다음에도 유물은 단계를 거듭할 때마다 별도의 오디션을 거친다. 유물 선정 오디션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유물의 건강상태다. 이때는 보존과학자(컨설베이터)의 도움을 받아 유물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실제 전시에 출품하는데 문제없는지를 점검한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박물관과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의 뒷얘기를 흥미진진하게 읽다 보면 다음 파트는 '큐레이터의 하루'인데 여기에 실린 글들은 작가님의 글솜씨가 두드러지는 부분이었다. 작가님이 큐레이터로 보내는 일상은 우리의 회사생활과 마찬가지로 자부심을 느낄 때도 있지만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작가님만의 단정하고 건조한 문체로 읽으니 어쩐지 크게 동요가 되지 않고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건 어쩌면 작가님의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 같은 긍정적이고 성실한 마인드가 내게 옮겨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모르는 박물관의 이야기에 끌려 책을 읽었지만 점점 작가님의 글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전에 박물관에서 유물을 볼 때면 당시에는 어떤 용도로 쓰였고 이게 어떻게 현재까지 보존되어 박물관에 올 수 있었는지를 궁금해했다면 이제는 이 유물이 이곳에 전시될 수 있게 도와준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정명희 큐레이터님이 기획한 전시에 꼭 가고 싶어졌다.
- 서평단 활동을 위해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