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지인들에게 많이 소개해주는 책 중 하나가 <무지개곶의 찻집>이다.

그 책을 쓴 모리사와 아키오의 신작이라니  너무나도 기대가 되었던 책이다.

 

제목부터  표지의 화사한 벚꽃 그림까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은 역시나 책 내용이나 스타일도 일본스러웠다.

일본 작가들 고유만의 그러한 스타일이나 냄새가 나는 책으로,  에쿠니 가오리도 생각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나 오가와 이토 등도 생각나는.. 어딘가 중독성이 있으면서 단순한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맘이 따뜻해지고, 또 중간중간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많으며, 음악, 와인, 요리 등이 등장하는 그런 유의 소설 말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참 담백하면서 소소한 감동까지 준다. 

 

탁해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고자 와인을 마신다. 스피츠의 보컬이 와인처럼 새콤달콤한 목소리로 '내일 네가 없으면 곤란해'라고 노래한다. 그걸 들으니 옆에 요짱이 있어줄 내일이라는 날이 너무나 절실하고 애타게 느껴졌다. (p.145)

 

"이 녀석. 남자가 울면 못써. 발가락쯤 없는 거, 그게 뭐 어때서 그래? 오히려 발가락 외엔 다 가졌으니 넌 행복한 아이란다. 한번 생각해볼까? 발가락이 없는 만큼 넌 천천히, 천천히 걷잖아. 천천히 걸으니 다른 사람이 못 보고 지나치는 걸 발견할 수 있어." (p.23)

책 제목에 대해 말하자면, <쓰가루>는 일본 아오모리 현 서부를 가리키는 지역 호칭이고, <백년식당>은 아오모리 현이 3세대, 70년 이상 계승되어온 대중 식당에게 내린 호칭이다. 한마디로 쓰가루 지역의 오랜 세대 이어져내려온 대중 식당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쓰가루에서 시작된 오모리 식당 창업주인 1대 겐지와 그의 부인 도요의 애틋하고 정겨운 사랑 이야기부터  4대째 후손인 요이치와 요이치의 여자친구 나나미의 아기자기하고도 위태로운 사랑 이야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의 사랑은 순박하면서 참 아름다워서 저절로 내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간지럽고 조금은 유치하긴 해도 사랑이란 원래 좀 유치해야 제맛 아닌가.

 

"남녀가 둘이 있을 때 머리 위에 꽃잎이 떨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겐지는 깜짝 놀라며 "저, 정말이야?" 하고 아이처럼 신 나는 얼굴을 했다. 도요가 어깨를 움츠리며 큭큭 웃는다.

"거짓말이에요. 방금 내가 지어낸 거." " 뭐, 뭐야, 그게." 겐지도 웃는다, (p.83)

그리고 그 긴 시대 동안 식당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따뜻한 마음 , 정성,  직업정신 등 이 합쳐졌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되는데,  무엇보다 이 책에서도 강조하는 건 흔히 말하는 '마음은 통한다' 가 아닐까 싶다. 마음과 마음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운명적으로 혹은 자연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처럼 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져온 식당일 수도 있고, 멀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 있기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이어져 있다는 것 일 수도 있고, 또 책을 읽는 누군가에겐 자신만의 다른 마음의 이어짐이 있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이때 나는 불평하는 손님에게까지 정중히 머리를 숙이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순간 나는 난생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의식하고 있었다.(p.281)

 

도쿄의 이 자그마한 하늘이 쓰가루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p.73)

주인공은 요이치로  그와  그의 여자친구 나나미의 이야기로 주로 전개되지만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중간 1대 증조할아버지, 3대 아버지, 어머니 시점으로도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서 약간은 특이한 전개다. 그래서 책 첫 장엔 처음부터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계도가 친절하게 그려져있다.

 

고독하고 차가운 도시 도쿄에서 같은 고향 출신인 주인공 커플은 우연히 만나 서로의 존재를 통해 깊이 위로받으며 사랑하게 되고, 그러나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가업을 이어야 할지도 모르는 요이치와 도시에 남아 사진작가로 활동해야 할 나나미는 이렇듯 서로 다른 미래를 구상하면서 갈등과 오해가 깊어가게 된다.

결론은 말하지 않겠지만 대충 작가 스타일을 볼 때 다들 대충은 짐작하실듯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벚꽃 잎이 흩날리는 쓰가루에서 100년의 시간을 넘어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랑과 인연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나에게 직업은 무엇인지, 긴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책의 배경 봄처럼 가슴 한켠 이  따스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벚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벚꽃 폭포 속에 있는 것 같았다.(p.246)

봄에 어울리는 책.  나도 빨리 아름다운 벚꽃 폭포 속을 거닐고 싶다.  올 듯 말 듯 자꾸 나를 애태우는 봄이 너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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