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매기 앤드루스.재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내용이 영상으로 제작되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모양이고, 그걸 광고로서 본 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서점에서 집어들고 몇 장을 넘겼다. 단지 몇 장만 넘겼는데 이상한 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여성'에 대해 당당하고 성의있게, 합리적이고 구체적으로, 특별한 게 아니라 다른 주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연한 주제로서 다룬 게 아니라 구색이나 맞춘, 게다가 아직도 이런 식으로 감성을 자극하려는 건지 당연하다는 건지 1+1 상품처럼 '아동'을 묶어서 얘기하는데 광고 버프를 받고 진열대 눈에 띄는 곳에 놓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에서 벗어난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일본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품들은 때로 본국에서조차 쓴소리를 면치 못 할 정도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끊임없이 시도된다. 고정 타겟, 원작의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졸작들이 나옴에도, 원작에 대한 애정으로, 그로 인한 호기심으로 인해 그래도 한번은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가장 확실하게 다수의 타겟층을 움직일 수 있는 주제 중의 하나는 성별이다. 성별에 대한 스펙트럼이 더 다채롭게 인정받아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다수는 '남성'이나 '여성' 혹은 적어도 둘을 기준이 되어 설명된다.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관의 실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 고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 진지한 주제를 그저 유행 정도로 생각하고 편가르기, 싸움이나 부추겨 이득을 취하거나 그걸 재밌다고 구경이나 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엄청 악의를 갖진 않았어도, 그 정돈 아니어도, 별 고민없이 분위기에 편승만 해 주제를 취하고 다루는 사람들도 있다. 100% 그 정도의 책이라고 깎아내리기에는 나름 역사 내용을 담고 있고, 교양서로서 나쁘지만은 않으나 반복되는 '여성(들)은 ~ 어떠한 불평등을 감내했다 / 불평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식의 문구가, (딱히 '여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티도 별로 안 날 정도로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다가 구색을 맞추려고 강조까지 해가며 억지로 우겨넣은 듯한 느낌이다. 이런 아쉬운 10%를 제외한 나머지 90%의 내용이 아깝다. 출판 과정에서 좀 더 꾸미고 광고해 좀 더 확실하게 팔자는 욕심이 껴든 느낌이다. 페미니즘이 일어나고 화제성이 커지기 시작한 초창기라면 모를까.
이럴 거면 확실한 입장을 견지해 대놓고 여성, 페미니즘을 주제로 당당히 주장하며 풍부하게 다룬 다른 책들,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예컨대 지식갤러리 '페미니즘의 책' 같은 책들이 훨씬 토론의 여지도 있어 낫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가정환경의 피해자로서 부모 탓을 하는 것도 성인이 되고 언제부턴가는 오히려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던데, 같은 그룹으로 얽히는 사람들이 '우린 ~ 이러저러한 피해자다.'라고 알맹이 없이 단순반복해서 주구장창 외치는 것에 마냥 공감이 되는가? 내가 잘 모르고 공감을 못 해서 그런 거라고 한다면, 그냥 지탄받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