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마차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4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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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쥐포를 참 좋아한다. 가게에서 파는 쥐포 말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쥐포 말이다. 집에 가서 먹어야지 하고 1봉을 사서 들고오면 버스를 타고 가는 사이에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다. 하나를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하나만 더 먹자 해서 또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2개나 먹었는데 그냥 계속 먹지 뭐 하면서 정신없이 아작아작 거리다 보면 이미 다 먹어버린 후다. 집에 갈 길은 멀었는데 벌써 다 먹었네...그러면서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사이에도 그 맛과 향미는 계속 남아있다. 쩝. 입맛을 다시면서 생각한다. 너무 적게 사와서 그런거 아닐까...다음에는 2봉을 사자. 그리고, 다음에 시내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나는 쥐포.

책이 도착한 날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경비실에서 책을 찾은 시간이 밤 12시.
단편집 모음이니까 한편 정도 맛만보고 자자... 했던게 새벽2시가 되더니, 묘한 흥분과 상상때문에 책 속 내용들을 되새김질(?)하다가 결국에는 새벽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번역한 사람은 호시 신이치의 작품을 브랜디에 비교했다만, 내 입장에서 이 책은 일주일내내 입맛다시게 만드는 쥐포와 다름아니다.지독한 중독성을 이야기하자면 마약이나 담배를 떠올릴테지만, 나는 마약도 담배도 하지 않기 때문에 2가지는 패스.

단편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깊이가 같지도 않다.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것은 굉장히 사회비판적이고, 어떤것은 굉장히 엉뚱하다. 안데르센동화처럼 상황설정자체가 안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있는 가 하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있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역설적인 상황에서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이다. 나를 가장 미치게 한 것은 해피엔딩도 비해피엔딩도 아닌 종잡을 수 없는 마무리인데, 나도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동사서독과 아비정전을 욕하고 있을 때 나 혼자만 미친듯이 좋아했었다 - 이건 씁쓸한 진실을 배어물고 있어서 인상을 쓰게 만든다.

 '고도의 문명'과 '대홍수'는 보다가 짜증이 솟구쳐 올라서 확 뒤엎어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블랙코미디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넘버클럽'같은 경우는 너무나 설득력이 있는 미래의-그것도 조만간에 생길 수 있는-일이라 소름끼치기까지 하다. 너무나 논쟁거리가 많은 사건을 툭 던져주고 어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 이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 한 편을 읽는 데는 3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시간은 평생.


호시신이치는 직관적인 눈을 가진 남자다. 상상력과 재치만 있었다면 코미디언이 되었을 테지만, 사실을 가리기 위해 덮고, 덮고 , 또 덮어 여러장 겹쳐놓은 거짓과 허구속에서도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책소개에서 베르나르베르베르의「나무」와 비교한 글이 있었는데, 비슷한 성향의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홍보멘트로써는 적절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말은 틀렸다. 베르베르와 신이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살고 있는 세계도 관점도 너무 다른 데, 일반적인 우리의(?) 관점에서 봤을 때 비슷하게 보이는 것뿐. 베르베르는 예측할 수 있는 반전을 던져주지만, 신이치는 전혀 말도 안될 것 같은 상황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무에서는 놀랄만한 결말을 위해 곳곳에 복선을 깔아두지만, 쇼트쇼트에서 그런 눈에 띄는 복선들은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이야기가 툭 튀어나와 합류하거나 처음부터 있었는데 눈치채지 못했던 아이러니한 설정들을 가지고 와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해버린다. 그 기발함에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호시신이치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다른 쇼트시리즈를 벌써 주문해 놓았다. 책을 주문하면서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출판사도 훌륭하다. 쓰잘데기 없는 두꺼운 표지나 쓸데없는 보너스페이지들을 넣지 않고 9천원이 안되는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번지르르 포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것이다. 책장을 넘긴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는데 굳이 미끼를 던질 필요가 있을까.

긴 글에 많은 걸 담기는 쉽다.
짧은 글에 많은 걸 담기는 어렵다.
다른 이들이 못보는 걸 볼 수 있는 통찰력의 힘일거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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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
이영대 지음 / 이코노믹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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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전보다 출근시간이 40분이 늦다. 집에 오는 시간은 2시간 빨라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만둘까 말까 하는 고민으로 머릿속이 가득차 있어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그게 요즘의 나였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

책제목을 보고 구세주를 만난 듯 매달렸다.


"중요한 일은 존중하는 마음을 끌어내기 쉽지만, 평범한 일은 존중하는 마음을 갖기 어렵다. - P54"

내가 하는 일의 2/3이상이 잡무였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어느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여겼다. 일이 점점 하기 싫어졌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직원들 각자의 일은 회사 전체를 위해 각각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맡은 일을 소홀히 하면 문제가 생기고 회사의 발전에 지장을 준다. 따라서 작은 일이라도 자신의 일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과 회사에 큰 이익이 된다. - P55"

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 하나? 정말로 어떤 의미따위가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장을 보고, 쓰레기를 치우고, 커피를 끓이고, 복사를 하고, 사람들이 마실 물 6리터를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나름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사무실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의욕으로 가득 차서 회사문을 들어서고 상사가 시키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회식 자리는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며 사람들과 친해지려 노력한다.그러나 처음기대와는 달리 매일반복되는 단순작업,상사에게 시달리는 스트레스,동료들과의 치열한 경쟁 등등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암담한 현실과 마주친다. - P75"

일을 시작한지 3개월째 , 직장인들이 흔히 말하는 3개월증후군(3개월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처음의 그 열정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여기에만 들어올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구조조정을 할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의지를 상실한 채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에 발전이 없고, 따라서 성과도 없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첫번째 감원대상이 된다 - P76"

뜨끔했다. 그제도 어제도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셨고, 그 시간내내 한 일은 우리 부서의 누군가를 헐뜯는 것이었다. 내 일이 다른 사람에 비해 많다고 불평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불만을 가졌다. 나는 첫번째 구조조정 대상자였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듯한 느낌에 숨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냉정하게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당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태해졌거나 일이 하기 싫어졌거나 직장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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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불륜 사유서 - 뉴욕에서 도쿄까지 세계인의 불륜 고백
파멜라 드러커멘 지음, 공효영 옮김 / 담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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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면서 했던 말.

"아, 한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다"

남성우월주의에 성범죄가 만연하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서 불행하다고 항상 생각하던 나였지만, 지구촌 불륜사유서를 읽고는 다른 곳들이 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녀평등이고, 성범죄고 간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더없는 슬픔이다.

 

<불륜>이란 기본적으로 <부부 >라는 상황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결혼>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것이다. 단호한 카톨릭 신자라면 쓰레기 같은 책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부부가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을 때, 그러니까 불화가 있어야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재미로, 스릴을 즐기기 위해, 심지어 아내와 사이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대체, 그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있길래?

 

그런데...그들의 머릿속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환경이 잘못되어 있었다.

이 책을 쓴 '호기심 많은' 기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불륜당사자를 인터뷰하고, 연구자료를 모아 불륜수치와 관계되는 요인들을 밝혔는데, 그것은 부와 평균수명과 문화와 국가정책이다. 예전의 소련과 중국에서는 개개인의 삶-불륜같은-을 통제함으로써 국민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체제에 대한 반항과 적개심으로 불륜을 저질렀다. 두 나라는 현재도 불륜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이유는 다르다. 러시아의 경우 80년대 이후 서구문명이 유입되면서 알코올중독,담배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남성이 늘었고, 성비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선택권이 높아진 남성과 유부남과 데이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처녀들이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경우 돈과 불륜이 연계되어 있다. 두 집 살림을 차릴 여유가 된다는 것은 재력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두번째 부인을 얻는 것이 남자들 사이에서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불륜이 가장 심각한 곳은 아프리카인데 이 곳이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이유와 상통한다. 우간다에서 산부인과를 찾는 4명의 여자 중 1명은 HIV감염자이고, 남아공성인의 HIV감염률은 22퍼센트이며,스와질란드에서는 30세가 되기전에 죽는 성인이 반이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일부다처제이기 때문에 전염률이 높다. 게다가 대부분 가난하며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 대가가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잠시의 쾌락을 선택한다고 한다. 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도 갖춰진다면 더 오래살려고 노력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다면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이야기에 공감을 안할려고 해도 안할 수가 없었다.

우리 나라와 가장 비슷한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에서는 불륜사건이 있었거나 이혼기록이 있으면,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다. 높은 사람들일수록 정직한 남편,따스한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불륜이 발각된 후에는 부부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진실해져야한다는 해결책도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불륜은 거짓말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가장 로맨틱하면서도 이상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한 여자와 5년이상 사랑을 나누면서 만남을 유지하는 관계라면 그건 이미 불륜이 아니지 않은가? 너무나 긴 불륜기간때문에 아주 몰래 만난다는 프랑스 남자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짜 사랑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럴거면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지...라는 생각도 들고. 나의 이런 가치관은 일부일처제, 즉 한 여자와 관계를 맺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환경과 문화에서 출발한다. 미국과 동일하게.

불륜사유가 측은했던, 그러니까 가장 불쌍해보였던 부부들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전통문화가 결혼한 남녀를 모두 불행하게 만들고, 그들이 불륜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길거리로 내몰리는 남자들때문에 섹스산업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다.

 

"으아, 저 사람들 진짜 이상해!" 라고 말하기 전에 이 책을 한번 보라. 지구촌 각각에는 각각의 사정이 있다. 그리고, 남녀성비도 비슷하고, 일부일처제에, 일반적으로 불륜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한번 느껴보라.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테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 한국에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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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히사이시 조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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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곡이 완성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일화라던가 영화 음악 제작비화 같은 것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히사이시 조의 작곡가로써의 인생과 철학을 말하고 있다.

특정한 곡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보다는 곡을 만드는 과정이라든가 음악을 완성하기까지의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영화음악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작곡...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내가 중점적으로 보았던 것들은 다른 것들인데 그가 에세이마다 붙였던 한 줄의 제목들이다. 그 한 줄 한 줄이 그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첫인상은 반드시 옳다.

이 명제에 200%공감했다. 나는 사람에 대해 좋고 싫음이 분명해서 첫인상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첫만남이 좋지 않으면 될 수 있으면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과 엮여 그 사람을 알게 된 후에 내 판단이 옳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히사이시 조 역시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인상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라며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저게 바로 저 사람의 진짜모습이야 라고들 말을 하는데 나중에 위기가 닥쳐오거나 급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처음에 했던 행동이 다시 튀어나오게 된다 그것이 그의 본성이다 나는 이것을 샌드위치이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라.

음악을 적게 쓰는 기타노다케시 감독과 작업을 할 때의 에피소드를 담은 에세이의 제목이다.
나도 항상 짜증이 났었다. 아무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슬픈 장면인데 울어라!울어라! 강요하면서 깔리는 큰 소리의 배경음악.
<다큐멘타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화는 픽션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자칫하면 상황을 지나치게 많이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령 누가 봐도 애인 사이라고 알 수 있는 남녀가 있다고 하자. 그 두사람을 서로 바라보게 한 다음 "사랑해" 라고 말하며 그 뒤에 "달콤한 멜로디"를 내보낸다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해설이나 자막으로 "그들은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다" 라고 설명한다 정말 끈질기다 기타노다케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표현할 때 두 사람이 서로 몸을 기대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침묵이 많은 프랑스영화를 좋아하나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진실된 명제들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히사이시 조 라는 사람이 '아아~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알게 되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음악을 들으면서 펑펑 울던 때가 있었는데...그는 상업적인 작곡가도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예술가도 아니다. 만들고 싶은 음악보다는 작품에 맞는 음악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세계보다는 사람들의 세계를 생각한다. 이것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는데, 언뜻보면 애매모호하고 알송달쏭하지만, 영화음악을 만드는 그의 입장에서 그가 정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가  아니었나 싶다. 작품이라는 테두리가 있고, 이미지를 총괄하는 감독이 있는 상황에서 창조정신을 발휘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몇번이나 작품을 같이 한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이지만,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음악이 좋지 않으면 다시는 감독이 자신에게 의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초초하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매번 진검승부라는 그의 말이 절절히 와 닿는다.

일본인으로써 일본이 아시아에 저지른 죄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사죄를 표한 부분도 좋았다. 작곡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히사이시조를 인간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읽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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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시대, 남보다 먼저 해야 성공한다
권오양 지음 / 징검다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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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고는 조금 실망했다.
-이 책도 그렇고 그런 자기 개발서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책을 손에 쥐고 3분이 지난 후 나는 그 생각을 말끔히 접었다.
-아, 끝까지 읽고 싶다 !

소설도 아닌, 에세이를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두가지 이유 중의 하나다.소재 자체가 흥미롭거나, 글쓴이의 문장솜씨가 뛰어나거나.
이 책은 두가지를 모두 갖췄다. 글 첫부분에서 아가사크리스티의 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긴장감과 흥분감이 나를 감쌌다. 이야기의 배경도 미국이나 호주,하와이가 아닌 동유럽이다. 우리나라대사관 대신 북한 대사관이 존재하고 공산주의 독재체제 아래 서독 동독이 냉전을 유지하고 있던 30년 전의 동유럽.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업가나 무역상이 아니더라도 흥미를 가질만한 새로운 세계다.

그는 "신중"한 타입이 아니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심사숙고하지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나서서 행동부터 해버리는 "하면 된다"스타일의 사업가다. 그리고, 목표한 것은 이루고 마는 끈기의 사나이다. 루프트한자의 인천-뮌헨 직행도 없던 시절 만 하루를 꼬박걸려 오스트리아라는 낯선 땅에 도착했던 빈털털이 유학생이 올림픽이전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던 동유럽에 한국물건을 11억이나 팔아치울 줄은 아무도 상상못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형체인점(현재 우리나라의 이마트나 하이마트)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그가 했던 행동이다. 견본을 보내고, 가격을 제시하고, 대기실에 앉아 몇시간씩 기다리면서 사장얼굴을 한번 보기까지 그는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열번도 더 다녔다. 결국 원가의 10%나 낮은 가격으로 손해를 보는 단가에 물건을 납품하고 되었지만, 그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고, 몇 년동안 물건을 펑크내는 일 없이 성실하게 가져다 주면서, 3~4일 걸리던 수리 시간도 24시간내로 줄이는 등 애프터서비스에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쌓은 신뢰덕분에 후에 물건원가보다 더 낮은 가격에 납품해온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이 자체적으로 구매가격을 20%나 올려준다. 동유럽에 굴러다니는 차5대중 1대에 장착되어 있는 오이트론이란 상표의 카오디오는 바로 작가의 회사 상품이다.

하지만, 10년도 안되는 기간에 그의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알프스에 별장을 지을 정도로 부자가 된 그를 보며 시기질투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오스트리아에 있던 한인들이다. 그를 못마땅해하던 한인 한명이 그가 무기를 밀수하고,탈세를 해서 돈을 벌었다며 오스트리아 정부에 신고를 한다. 영문도 모르고 한밤중에 끌려가 조서를 쓰고 심문을 받았던 그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3개월에 걸쳐 세무조사를 했던 검찰은 티클만끔의 의심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데다 오스트리아 자선사업에 기부까지 하고있던 그를 보며 오히려 감동받는다. 

후반에 가면 그가 겪었던 못난 한국인들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글을 읽는 내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외국인에게는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아무소리 못하면서 같은 한인끼리는 깎아내리고 시기하고 욕하기에 바쁜 한인들. 우리가 이렇게까지 못났던가? 주위에서 잘된 사람을 보면 자신도 잘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않고 자기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기는 하지만, 외국에서 살면서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정말로 우울해졌다.

위에 언급한 국민성 외에도 그냥 읽고 지나갈 수 없을만큼 심각한 내용들이 많아서 책을 덮은 후에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기개발서, 성공한 사람의 에세이 등으로 요약하기보다는
삶의 견본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산 인생선배의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싶다.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3시간 오기 위해 3시간 ...  교통편도 없는 골짜기골짜기 어촌에서 태어나 정말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지은이의 글은 힐러리나 삼성그룹의 회장처럼 반석위에 우뚝선 사람들보다 더 와 닿는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결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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