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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 강화의 자연 속에서 삶을 그립니다
김금숙 지음 / 남해의봄날 / 2022년 10월
평점 :
도서관에 오래 있다 보면 작가로 기억되는 작품보다 제목(표지)로 기억되는 책이 더 많다. <고깽이>가 그랬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근무하거나, 어린이 만화에 관심 있다면 고깽이를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다. 남해의봄날 공식 SNS에 올라온 표지 이미지와 제목에 홀딱 반해 신청책. 책을 받아들고서야 <고깽이>를 그린 작가님의 에세이라는 걸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김금숙 작가님의 에세이라니. 이 책이 좀 더 달리 보인다.
이전에 읽어보았던 <고깽이>, <아버지의 노래>처럼 이 에세이 역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숲속에서 나무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바람 소리에 귀를 열어둔 것처럼 평안하고 자연스럽다. 작가님이 계신 강화의 풍경도 이처럼 평화로울까?
이런 비교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지만 다른 글 그림 작가보다 만화작가는 늘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능력에 대한 신성함이랄까. 그래서 늘 그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작품의 주제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어떤 힘에 끌려서 집요함을 발휘하고 작품을 이 세상에 내어놓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을 읽고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밖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유년 시절, 미술 공부를 하며 프랑스에 머물던 젊은 날, 그리고 지금 강화에서의 시간들이 작가로서의 시선을 형성한 모든 토대가 되었다는 것. 책 중간중간에 간략한 작품 소개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 안내되어 있어서 미술관 도슨트같이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아직 읽지 못한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게 됐다.
페이지를 넘기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그림과 글 덕분에 잠깐 책을 덮고 오래 머물다 다시 책장을 펼친다. 좋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이상한 포인트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따로 있었다. <아버지와 지네>편이다.
살생의 쾌감이란 혹시 이런 것일까.
문득 그 기쁨에 열광하는 내가 섬뜩했다.
나는 번개 같은 속도로 살생의 명분을 찾아냈다.
이건 사람을 해치는 지네다.
그러니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그 지네로부터 아버지를 떠올린다. 화장실에서 지네를 때려잡는 작가님의 모습이 상상돼서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 재미있었고, 지네로 시작해 술술 풀려나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늘 소중한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남해의봄날' 출판사에 다시 한번 감탄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강화에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국자와 주걱' 책방에도.
에필로그 마지막에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이 기다리고 있다. 살랑살랑 산책길 끝에 만난 이 문장은 두고두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서 더 빛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궁금함에 못 이겨 책을 펼쳐보리라 기대하며 마지막 문장은 내 맘속에만 세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