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이를 위한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어른들은 자라나는 우리들에게 '어려울 때를 너무 모른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너무 풍족한 생활을 해서인지, 우리는 불과 30여년 전인 가난한 시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난한 시대를 알던 어른들과 풍족한 시대만 알던 우리들은 때론 가치관의 차이로, 심하게 충돌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풍족한 시대만을 안 어린 세대고, 때론 가난한 시대를 이야기하는 어른들을 보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왜 풍족한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은 하는지 이해를 할수 없었다.
우동 한 그릇은 패망해서 어렵던 일본의 가난한 시대에 세 모자와 우동집 주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이다. 해방후 우리나라 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난했던 시대였다. 이야기는 과거 어렵던 시절, 섣닫 그믐, 우동집에서 시작한다. 섣달 그믐날 '북해정'이라는 작은 우동집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아주 남루한 차림새의 여자가 들어온다. 우동을 일인분만 시켜도 되냐고 묻는 그녀의 등뒤로 아홉 살,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두 소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다. 흔쾌히 승낙한 주인장의 부인이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부엌에서 세 모자를 본 주인은 재빨리 끓는 물에 우동 1.5인분을 넣는다. 그냥 세 모자가 불쌍했다면 3인분을 주었으면 될 일이였지만 그들이 부끄러워 할 것을 생각해서 배려한 것이다.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눠먹은 세 모자는 150엔을 지불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그리고 다음해, 그 다음해 세 모자는 다시 우동집을 찾는다. 그리고 그 해 그리고 그 다음해 그들은 1인분, 2인분만을 시키고 주인은 1.5인분, 3인분을 준다. 다음해부터 세 모자가 앉았던 2번 테이블은 예약석이 된다. 하지만 세 모자는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우동집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가게가 크게 성하여 모두 테이블을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2번 테이블만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 언젠가는 올 세 모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10여년이 흐른 섣닫그믐날. 한창 망년회가 진행중인 북해정에 정장을 한 두 청년과 아주머니 한 명이 들어온다. 그 순간 주인내외는 오래 전 우동을 시켰던 가난하던 세모자임을 단숨에 알아본다. 비록 예전보다 모습은 바뀌었지만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땐 조그만 꼬마였던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14년 전 우동 1인분을 시켜 먹기 위해 여기 왔었죠. 1년의 마지막 날 먹는 우동 한 그릇은 우리 가족에게 큰 희망과 행복이었습니다. 그 후 이사를 가서 못 왔습니다. 올해 저는 의사 시험에 합격했고 동생은 은행에서 일하고 있지요. 올해 우리 세 식구는 저희 일생에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죠. 북해정에서 우동 3인분을 시키는 일 말입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이웃 간의 훈훈한 온정과 사랑 때문이다. 가난한 세 모자를 위해 선뜻 우동을 더 내어놓고 그 식탁을 예약 석으로 만들고 세 모자를 기다리고 세 모자가 자존심이 상할까봐 일부러 티 안 나게 우동을 더 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주인내외와, 십수년이 흐른 후 그 은혜를 잊지 못하고 우동 세그릇을 먹으려고 다시 찾아온 세 모자. 이 부분에선 지금은 텔레비전에서도 잘 느낄수 없는 형언할수 없는 종류의 감동이 느껴졌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 우동 한 그릇처럼 가난한 모자를 위해 우동을 더 내어놓고 그 은혜에 보은하기 위해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있을까? 우리사회에서는 주인이 가난한 모자를 매정하게 내쫒고, 세 모자들이 혹 주인에게 보은을 입었어도 보은은커녕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는 찾지 않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에 나는 씁쓸하게 책을 덮었지만 마음속의 감동만은 읽었던 때 느꼈던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