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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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눈치챌 수 없는 여행"

 

시간과 돈을 들여 직접 몸소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의 '읽기'를 통해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즐거울까.

이 책은 13권의 문학작품으로 떠나는 즐거운 여행 책이다. 작가가 읽고 느낀 것과 그 안에 직접 들어가, 인물과 만나고 작가와 인사를 하는 등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과 '작가 이야기'처럼 이 책들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해주는 작가의 배려도 있다.

 

체호프부터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카프카까지 '읽기'를 통한 '생각의 여행'.

 

 

 

그리고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의 기나긴 고백.

 

-아니, 그러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정확히 뭐가 무서운 겁니까?

 

-모든것이 무서워요.

오늘 나는 무엇인가를 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내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돼요.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게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 안톤 체호프   p31

 

 

"그래서 그 집은 비었고, 문들은 잠기고. 깔개들은 둥글게 말려 있었기에, 길 잃은 실 바람이 막대한 군대의 전위대처럼 사납게 휘몰아쳐 들어와서 텅빈 식탁을 스치며 조금씩 물어뜯고 부채질했어도, 침실이나 응접실에서 펄럭이는 커튼과 삐걱거리는 목재가구. 식탁의 드러난 다리들, 이미 물때가 끼고 변색되고 금이 간 스튜 냄비와 도자리를 제외하고 바람에 저항하는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버리고 남겨둔 것들 (신발 한 켤레, 사냥 모자, 옷장에 남은 빛바랜 치마와 코트), 이런 것들만이 인간의 형체를 간직한 채, 한때 그것들이 인간의 몸으로 채워져 활기를 띠었으며, 그 후크와 단추들을 채우느라 손들이 분주했고, 거울에 얼굴이 담기고 세계가 담겨 있었음을 그 허허로움으로 알려 주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몸을 돌렸고, 손이 나타났고, 문이 열렸고 아이들이 뛰어들어와 뒹굴다가 다시 나갔던 그 세계는 텅 비어 사라졌다."

- 버지니아 울프  p58

 

 

오래전에 살아 하나의 얼굴로 남은 셰익스피어.

수많은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세계 각국에서 각각의 언어로

쉴 새 없이 공연되고 있을 셰익스피어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셰익스피어 생전에 온전한 텍스트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연극의 대본은 각 배우들에게 각자의 대사만 적힌 형태로 주어졌고,

대부분 셰익스피어 사후에야, 배우들의 기억과 조각난 원고들에 의지해 모아진 대사들로

전체가 연결된 하나의 대본 형태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도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얼굴이라고 알고 있는 얼굴은

작가 사후에 화가가 상상력을 보태 그려,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라고 알려진 인물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글들을 썼는지조차

의문에 싸여 있다고 하니......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는 셰익스피어 씨.

그 셰익스피어를 익숙한 제목과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실제 문장들을,

읽어 보기를 권장함...... .  - 윌리엄 셰익스피어  p95_98

 

 

무심결에 한 손을 움직이다가 갑자기 주먹 안에 꼭 쥐고 있던 20코페이카짜리 은화의 감촉을 느꼈다. 그는 주먹을 풀고 동전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팔을 치켜들어 물속에 던졌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순간 그는 가위를 들고 제 손으로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과 모든 것으로부터 싹둑 잘라낸 기분이었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생각들이나 생각의 파편들, 혹은 어떤 표상들이 질서도, 연관도 없이 스쳐갈 뿐이었고 어릴 적에 봤거나 어디선가 겨우 한 번 마주친, 그러고는 절대 떠올린 적이 없을 법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v 교회의 종루, 어느 술집의 당구대와 그 당구대 옆에 있던 어느 장교, 어느 지하 담배가게의 여연송 냄새, 선술집, 곳곳에 구정물이 흐르고 달걀 껍질이 나뒹구는 칠흙같이 캄캄한 계단,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요일의 종소리...... . 대상들은 서로 교체되면서 회오리처럼 빙빙 맴돌았다. 더러 마음에 드는 것도 있어서 거기에 매달려 보았지만 그쪽에서 꺼져 버렸으며, 대체로 뭔가 내부에서 그를 짓눌러도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따금씩은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p120_121

 

 

물결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잔잔한 물살 때문에 개츠비를 태운 매트리스가 불규칙하게 풀장 아래로 움직였다. 수면에 잔물결 하나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가벼운 한 줄기 바람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짐을 싣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매트리스의 흐름을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매트리스는 수면 위에 떠 있던 나뭇잎 더미에 닿자 천천히 돌면서 마치 캠퍼스의 다리처럼 물 위에 붉은 동그라미를 남겨 놓았다. 

- F.스콧 피츠제럴드  p149

 

 

사람들은,

"그는 살아 있고 따뜻하고 비밀스럽고 주먹만 한 크기의 아직 얼굴도 성별도 없는 한 인간 육체의 어둠 속에 있는 석류빛 심장을 꿈꾸었다."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젊은 시절 여행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 아마도 편람 중의 편람일 책을 찾아 돌아다녔다. 이제 내 눈은 지금 내가 쓰고 잇는 것조차 알아볼 수 없고, 나는 내가 태어난 육각형의 방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죽으면, 자비로운 사람들이 나를 난간 위로 던져 버릴 것이다. 내 무덤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허공이 될 것이고, 내육체는 끝없이 떨어질 것이고, 썩을것이며, 내가 아마도 무한하게 떨어지면서 만들어낼 바람 속에서 분해될 것이다. 

그 누구도 애정과 공포로 가득하지 않은 음절을 발음할 수 없다. 또한 그 비밀의 언어들 가운데에서 강력한 신의 이름이 아닌 것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말한다는 것은 동어반복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내용도 없고 그저 긴 말을 늘어놓을 뿐인 편지는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은 육각형 진열실들 중의 하나에 있는 다섯 개의 책장에 꽂혀 있는 서른 권의 책들 중 한 권에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역시 그런 편지에 대한 반론도 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p178_179

 

 

온갖 빛깔의 불꽃 다발들이 점점 그 수를 더해 가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의사 리유는,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 페스트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하여, 아니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해 추억만이라도 남겨 놓기 위하여,

그리고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것만이라도,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알베르 카뮈  p265

 

 

그것을 아폴론이었소, 아폴롱이오, 친구여. 나의 불해은, 불행은, 나의 고통을 완성한 것은.

하지만 눈을 직접 찌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가련한 나 자신이었소.

 

......

그랬더라면 아버지의 살해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을! 또  사람들 사이에서 내 어머니의 배우자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나는 신에게 버림받고, 경건치 못할 자식으로, 불운한 나를 낳아 준 바로 그분들과 함께 자식을 낳은 자로다. 불행보다 더한 불행이 있다면, 그것을 오이디푸스가 만났도다. 

-소포클래스  p299 

 

 

"조시는 매일 새로워지고 단 하나의 결정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완전하게 보존해 나갑니다. 바로 그저께의, 그리고 매달, 매년, 십 년 전의 쓰레기들 위에 쌓이는 어제의 쓰레기 더미의 형태로 말입니다." (지속되는 도시들 1 - 레오니아) -이탈로 칼비노  p325

 

 

"나는 내가 이 입구 쪽 입석에 서서 가죽 손잡이에 매달려 이 전차로 하여금 나응 실어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 사람들이 전차에서 비켜 서거나 말없이 지나치거나 쇼윈도 앞에 멈춰 서 있다는 사실 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다.- 하기야 누가 나더러 그러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또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가."  -프란츠 카프카  p351

 

 

 

평범하지만 섬세한 표현으로 체호프의 다양한 인물묘사는 읽을때마다 감탄한다. 단순한 인물 관계도 그의 문장으로 아름답게 표현된다. 암울함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약간의 유머. 체호프의 유머가 있었다.

 

체호프와 사뭇 다른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했었기에 더 절실하지 않았나 싶다. 묵직하고 우울한 느낌의 문장의 표현은 불편하기 보다는 뿌옇게 얇은 막이 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답답하지는 않지만, 뭔가 개운하지 않은 이상한 느낌.

 

세상은 복잡하고 흥미롭지만 절대 근본적인 것인 것은 알 수 없고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볼 수 없다고 말한 보르헤스의 작품이 보여주는 모호함과 신비함은 철학적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오이디푸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들을 비교하고 설명해주는 부분은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었다. 신화 속 이야기이면서 그들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었다.

 

 

뭔가의 가치를 글로 평가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일일까? 매번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만났고 작가의 도움으로, 생각의 표현을 꼭 글로 표현할 필요는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 작품을 만화로 그리는 건 독서 세계의 새로운 여행이자 경험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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