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이진송 지음, 윤의진 그림 / 프런티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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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아름다움은 발견되어 사랑받으려고 기다리는 산삼이 아니다. 타인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면을 발견하고 사랑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군다나 여성은 굳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선구안을 기를 필요도, 모든 조건을 제치고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사랑할 의무도 없다. 혹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해도 다른 아름다움을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은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오직 뛰어난 인간만이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심각하게 뒤틀려 있다는 증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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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의 심리 -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의 마음으로 읽는 학교폭력
이보경 지음 / 양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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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은 불편한 것이 싫어서 괴롭힘당하는 아이를 피하거나 같이 괴롭히거나 차라리 없는 존재로 여기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따돌려지는 아이들은 어느덧 ‘호모 사케르‘가 된다.

정치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이 쓴 책 이름이기도 한 ‘호모 사케르‘는 ‘벌거벗은 생명‘이자 ‘신성한 생명‘이라는 이중의 뜻이 있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를 로마 시대의 특이한 수인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bios(사회, 정치적 삶)를 박탈당하고 zoe(생물적 삶)밖에 가지지 못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래 호모 사케르는 로마제국에서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추방된 자를 일컫는데,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존재‘로 시민권이 박탈당한 무소유적 존재라고 한다. 근대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 전쟁의 포로들, 우리나라 반공 시대의 공산주의자들은 ‘벌거벗은 생명들‘이다. 희생양보다 더 하위인 존재들이다. 우리가 그들의 고통에 두 눈을 가리고 터부시하기에 신성한 생명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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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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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정신을 차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거라.

ㅡ에리히 케스트너의 <덫에 걸린 쥐에게 An die Maus der Falle>

실로 기막힌 이 살덩어리와 추한 피부밖에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행‘뿐이고 그것이 환멸로 끝날 것은 미리부터 약속되어 있는 까닭에 출발이 그다지도 정다웠고 마음 아픈 환희를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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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목소리 후마니타스의 문학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김현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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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여정>

사막은 지도를 조롱한다. 바람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모래는 결코 제자리에 있는 법이 없다. 불타는 광활한 사막에서는 누구나 길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미들은 지름길을 통해 집으로 향한다. 주저 없이 한 줄로 행진하면서 정확히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그러고 나서 그들의 집으로 이어지는 작은 구멍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판다. 그들은 결코 방향을 혼동하지 않으며, 남의 구멍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무게가 1밀리그램밖에 안 되는 그 작은 뇌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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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 피아니스트의 아흔 해 인생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시모어 번스타인.앤드루 하비 지음, 장호연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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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는 하나의 이유는 살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기도 할 겁니다. 나의 경우를 보고 너무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나는 신을 대문자 G를 써서 표기하지 않습니다.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 팽창하는 우주를 생각하고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생명을 생각할 때면 나는 너무도 크나큰 경외감이 들어, 이른바 천국이라고 하는 곳의 왕좌에 사람 형상을 한 존재가 앉아서 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내 이해를 넘어섭니다. 나는 이런 관념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존재ㅡ그런 것이 있다면ㅡ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름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알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안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영혼의 저장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고 행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에 답할 수 있는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도움을 구하기 위해 신의 존재에 항상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바로 그 영혼의 저장고와 상의해야 합니다.


신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나라면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거기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모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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