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픽션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전계수 감독, 공효진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오늘 ‘러브픽션’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참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는데, 내가 이렇게 한국영화를 보면서 충족감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정말 마음에 든다. 그것도 아주 꽉 들어맞는다.‘러브픽션’은 별로 유명하지 못 한 소설가인 남자 주인공‘주월’과 알라스카에서 온 매력적인 여자‘예영’이 극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가르치려 들 지 않는 점이다. 지나치게 어렵고 학구적인 용어를 들며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도움만을 주며(느끼한 아저씨의 등장ㅎㅎ)보이는 그대로 느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점은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이유에 불과하고, 나를 충족감에 몸을 부르르 떨도록 만들은 것은 영화에 담긴 모든 것이 정말 섬세하고 감성적이라는 점이다.

 

사실, 겨드랑이 털과 같은 코믹적 요소를 통해 대중성을 획득하기 때문에 가볍고, 어떻게 보면 이러다할 인과관계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허무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가까이 다가가보면 그 안에 녹아있는 간지러움이 정말 좋다.

가장 먼저 기뻐했던 장면은 주월과 예영의 첫 데이트 장면이었던 것 같다. 채식주의자 주월이 예영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쌈을 높이 쌓아 그 안에 고기를 숨겨 꾸역꾸역 먹었던 장면. 이 장면에서 쌈과 고기로 인간의 외면적, 그리고 내면적 모습에 대해 말한다.

“주월씨는 사람을 판단할 때에도 내면보다 겉모습이 중요하시겠어요.” 예영의 말에 주월은 대답한다. 조금은 나의 예상을 빗겨나가면서.

“네. 저는 외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걸을 때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는지, 옷의 스타일은 어떠한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나요?”

그 대답에 예령은 약간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도 모르게 같이 끄덕였다. 저런 진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이 장면은 후반부에 주월이 예영에 대한 과거이야기를 들으면서 변하는 모습과 상반되는 장면이다. 주월이 예영에 대한 소문에 의해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환상과 경의가 깨지면서, 점차 애정이 식는다. 그러자 초반에 낭만적 감정에 빠져 고기마저도 입에 꾸역꾸역 넣던 주월이 예영에게 신경질을 낸다. 네가 맛있게 먹는 것이 심통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며 말하며. 이는 일부러 예영이 주월의 예전 여자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하는 의도적인 행동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 장면에서 예영 자신이 곧 과거가 될 수 있음을 절감한 장면으로 느껴졌다.

 

영화 곳곳에 보통 아저씨의 ‘왜 나는 너를 사랑 하는가’모습이 보여 짜릿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내가 일기장에 남기기도 했던, 언어의 공적인 성격에 대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적어도 1초라는 시간 안에 만 번 이상의 사랑해가 울려 퍼질 것을 장담한다. 세계 곳곳에서 그들은 감정의 깊이가 깊어, 혹은 그다지 깊지 않다고 하더라고 사랑을 말한다. 달콤한 미소와 함께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지나치게 남용되고 반복되어 그 안에 담긴 가치가 덜렁거리고 헤진 느낌이다. 이러한 흔함의 홍수 속에서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순간, 만 명 이상의 사람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 다를 것이 무언가? 네가 나에게 말하는 감정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는 거지. 그러니 나에겐 제발 다른 말을 해 줘. 오로지 나만 느끼고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보통아저씨 책에서 그랬듯, 주월은 방울토마토를 한 번 쳐다본 후 눈을 마주치며 말한다.

“너를 방울방울해.”

아, 더 이상의 부차적 설명이 필요할까.

 

그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은, '사랑의 이유' 부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다면, 이 부분은 앞에 그 책이 아니라,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책에서 나왓던 장면인 것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도 공감이 되는 문구라 공책에 옮겨 적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주월은 예영에게 묻는다.

“너는 왜 내가 너를 좋아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해. 그런데 묻고 싶지 않아.”

“왜?”

“그냥 내가 상상하는 게 더 좋아. 주월씨가 무슨 이유를 대든, 그건 일시적인 것이고 우리가 만약에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당신을 거짓말쟁이로 만 들고 싶지 않아”

이 장면과 유사한 장면이 ‘우리는 사랑일까’에도 나온다. 여주인공은 자신과 사랑을 하는 남자주인공에서 자신을 왜 좋아한다는 질문에 답을 받고 싶지 않아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가변적이고 한시적인 것일 뿐일 테니까. 자신 자체에 내재되어 있어 절대 불변하는 무언가로 인해 사랑받고 싶어 한다.

 

오늘 학원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는 보통아저씨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영화를 보고 나니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우리의 감정을 세세히 기록하고 꼬집은 보통아저씨에게는 더더욱 매력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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