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범우문고 25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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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무라는 부모의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인물이다. 시마무라는 어렸을 때부터 가부키극을 많이 접하여 전통무용을 연구하지만, 일본 전통무용의 고질적인 폐쇄성과 독선에 의해 서양무용 연구로 돌아서 버리게 된다. 이 외에도 그는 현제에서 과거를, 도시에서 시골을, 일본에서 서양의 것을, 한 여자에게서 다른 여자를 떠올리며, 마지막에는 지상에서 천상의 것을 추구한다.

 

   이 소설의 당시 시대상은 메이지 유신과 관련되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일제의 강점에 의해 문호가 열렸을 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것 중 하나가 도박이었다. 갑작스러운 자본주의의 바람은 사람들을 혼란케 만들었다. 농사는 경제활동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활동에 가까웠다. 굳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굶어 죽게 생긴 것이다. 값싼 수입 품목들이 들어오며 더 이상 농사로는 먹고 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하나.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도박이다. 어찌할 수 없는 삶을 에 맡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설국을 본다면, 시마무라의 우유부단함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마무라는 에 맡기지는 않는데, 그것은 사회가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갖추게 되었거나, 아니면 아직 운에 맡길 만큼의 가난한 삶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시마무라는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 보이며 지식인이다. 대신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서양 철학의 이분법일 것이다.

 

   한편 이 소설은 많은 부분에서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먼저 현제에서 과거, 도시에서 시골 등 극과 극을 오가는 시마무라를 보면 알 수 있다. 시마무라가 마지막에 당도할 곳은 어디겠는가. 대지에서 하늘을, 삶에서 죽음으로 향할 것이다. 이는 우리들이 행복에 겨울 때 죽음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 외에도 영원한 자연과 인간의 비교. 마지막 장면에서 은하수를 받아들이는 시마무라의 모습은 자연과의 합일 같기도 하다. 그것은 곧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으로 보이기도 하고 죽음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설국 속 모든 인물에게 나타난다고 할 수도 있다. 고마코의 헛수고를 통해 삶의 유한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유코를 보며 미쳐버릴 거라는 고마코의 말을 보면서도 알 수 있다. 고마코는 죽음의 감각에 매우 예민한 인물로 보인다. 그녀만이 유코가 자살할 것을 암시한다. 유코의 죽음냄새는 약혼자의 죽음으로 가장 잘 나타나있다. 라캉의 거울이론을 통해 본다면, 죽은 약혼자는 유코의 마음 한 구석에 평생토록 남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에 따르면 통과의례를 재대로 통과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남과 나를 동일시하는 선외디푸스적인 면모를 결코 버리지 못하게 되는데-리비도의 이동을 자유롭게 못하는데-이를 잘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죽은 약혼자는 유코에 의해 곧 그녀가 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죽지 않는 이상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유코는 이러한 상처의 극복을 위해 시마무라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만-리비도의 이동을 꾀하지만-결국은 실패하며 자신을 없애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시마무라가 유코와 고마코 사이에서의 갈등을 하듯이, 고마코도 죽은 약혼자와 시마무라 사이에서 갈등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은 결국 우울증을 가져올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의 면모는 무한한 선택이 주어진 자본주의, 자유주의에서 갈등하는 시민들의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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