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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완독 12 /사회과학] 부러진 사다리. 키스 페인. 이영아 옮김. 와이즈베리.
서점을 구경하다 보면 -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서점보다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지만 -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된 책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제목과 비슷한 내용이 많다. 내용을 들춰보면 이 책과 저 책의 특별한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다. 단지,
저자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메이저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예쁜 디자인을 가졌는지가 다를 뿐. 그래서 서점에서 홍보하는 베스트셀러나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된 책에 관심 갖지 않는다. 좋아하는 검증된 출판사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저자의 프로필과 목차를 들춰보면서 나와 맞는지를
확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와이즈베리는 검증된 출판사이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누적한 ‘와이즈베리’라는
출판사의 키워드는 ‘교육, 인문, 심리’이다. 교과서를 만들던 대한교과서에서 미래엔으로, 그리고 와이즈베리와 북폴리오로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도 믿음직하고, 교과서를 만들던 곳답게 - 물론 지금도 만들고 있다. - 출간되는 모든 책이 교육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그렇지 않은 책은
거의 없겠지만, 시답잖은 책도 종종 있으니까.)
와이즈베리의 새해 신간 ‘부러진 사다리’는 자극적인 표지만큼 흥미롭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가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건 살면서 느끼고 있었지만 내가 의식하지 못한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불평등이 존재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키스 페인은 ‘왜 공정하려고 노력해도 편향될 수밖에 없는가?’,
‘왜 불평등이 심할수록 자멸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등을 실험심리학을 이용하여 감정, 인지적인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있다.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연구로 불평등이 우리를 경제적으로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 스트레스 반응, 면역 체계, 정의와
공정함 같은 도덕적 개념에 대한 시각까지 바꿔놓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 소개 참고)
이 책이 더 흥미로운 것은 저자 키스 페인이 백인 남성이라는 점이다. 미국에 사는 백인 남성이
인종차별에 대하여 연구하고 글을 쓴 점이 신기했다. 책 표지에 있는 흑백 사진으로 당연하게 유색인종의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으로 만들어지는 상대적 비교, 가난, 정치 성향, 수명, 신과 믿음, 인종차별과 소득의 불평등,
급여 등 눈에 드러나는 것부터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까지 삶의 영역 곳곳에 숨겨져 있는 불평등을 연구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모르면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무의식적 행동 패턴을 인지하게 되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남보다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뇌는 섹스, 돈, 마약을 경험할 때와 똑같이
반응했다. 지위는 분명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요인이며, 사람들이 높은 지위를 갈망한다고 말할 때 그 ‘갈망’은 그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62)
“가난뱅이는 백만장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더 잘 나가는 다른 가난뱅이를 질투한다.” (63)
불평등이란 공유하는 공간이 없음을 의미한다.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은 사는 곳, 일하는 곳, 다니는
학교가 서로 다르다. (70)
우리는 보통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보수적인 순간’과 ‘진보적인 순간’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 사실 사람은 보수적일 때도 있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할 때도 있다. 즉 자신의 원칙에 근거하여 어떤 쟁점을 심사숙고한
다음 이념적 결론을 내릴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특정 상황의 신호를 받아 그때그때 적합한 이념을 찾기도 한다. 우리가 두 가지 중 어떤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117)
저학력의 중년 백인 남자들은 무너진 기대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백인들은 비슷한
학력의 흑인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이 벌긴 하지만, 백인으로서 예부터 누려온 특권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147)
삶이 고달플수록 신은 더 기적적인 존재가 된다. (185)
살면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수 없고 필요하지도 않겠지만, ‘부러진 사다리’는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고, 생소하고 어렵지만 요 정도의 지식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느리게 정독했다. ‘헌법’에 대한 책과, ‘이타심’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 ‘부러진 사다리’를 읽으며 ‘아는 만큼 보인다.’를 실감한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법을 알면 더 잘 살 수 있었다. 불평등
따위 의식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인지하면 더 현명하게 판단하며 살 수 있으리라. 이 책을 읽는다고 나와 우리의 불평등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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