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운명게임 1~2 세트 - 전2권
박상우 지음 / 해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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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접근했다가 깊은 늪에 빠진 느낌으로 내내 소설을 읽었다.
장르 또한 단정하기가 어렵다. 단순한 SF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철학적인 내용이 많다.
소설과 공상과학의 가면을 쓴 철학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표지는 심오하면서 무엇인가 오락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소설 속 후반 전투씬은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흥미롭고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에 이 소설의 주류가 재미와 오락만은 아니라는 나의 판단이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아래 문구는 책의 극초반에 배치해서 광고하듯이 독자에게 알려준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 샤카무니
소설을 읽는 누구든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문장에 세뇌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의 주제에 맞닿아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이보리가 주인공인 소설 하나와 그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전개된다.
처음 줄거리를 접했을 때는 재밌게 봤던 드라마 W처럼 작가와 작품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기대했다.
하지만 처음 기대와는 전혀 다른 전개가 펼쳐지는데 이런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정말 궁금해질 정도로 예측 불허다.

소설속 인물인 이보리는 이미 자각을 한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무엇인가 깨달은 상태로 책을 썼고 그 책을 통해 소설속에서 어르신으로 칭하는 인물에게 상담 업무를 의뢰받게 된다.

"태어난 모든 인간이 아바타 시스템에 매달린 존재들이라면, 그래서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구상에 매달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그래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 라고 하겠습니까?"
이보리가 소설속에서 어르신에게 날린 이 대사는 가히 심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처럼 우리가 평소에 품고있는 "나"와 "세상"이라는 존재의 실체에 대해 반복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과 문답들이 소설의 흐름 전반에 걸쳐 흩뿌려져 있다.

"신이라는 말 자체가 지구인들에게 심어진 정신적 세뇌의 결과라고 믿기 때문이다. 신은 장구한 지구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존재이고 신이라는 개념은 온 우주를 통틀어 오직 지구에만 존재하니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신의 존재도 이 소설에서 이처럼 가볍게 부정당한다. 신을 대신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위 자아와의 소통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작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기 캐릭터를 스스로 생성시켜 오히려 작각를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공 이보리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소설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다뤄진다. 실제로 많은 소설가들은 이야기를 꾸며내고 지어내지 않고 머릿속에서 생성된 공간과 인물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단지 소설가는 그 이야기를 받아적는 역할만 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무너뜨려 작가 자신을 소설속에 화자로 만들어 독자로 하여금 더욱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나도 아니고 자아도 아니고, 고작 기억와 정보를 저장한 유전자의 탈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생명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인간을 조종하는 진짜 주인은 유전자라고 이야기 한다. 어쩌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이 절망적인 문장과 인용은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모으로 그것들을 해석해서 본인만의 철학을 구축한 다음 주인공 이보리와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틀이 자신이 태어난 날과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된 날이라고 했습니다."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되는 날, 그날이 바로 자기 윤회의 내적 필연성에 눈을 뜨게 되는 날입니다."
이 대사 역시 소설의 주인공 이보리가 어르신에게 건네는 말이다.
이보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의 기반은 불교, 힌두교이고 우파니샤드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통해 고대 인도 철학 사상이 근본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발췌한 내용들만 봐도 왜 이 소설이 일반적인 소설과 다르게 철학책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운명게임이라는 소설을 이렇게 전반적으로 깊은 대담을 통해 철학의 사상을 전달함과 동시에 소설 그 자체에도 충실함을 보여준다.
1권 말미에 전개되는 이야기인 이보리의 정체와 다른 존재에 대한 긴장감은 2권으로 이어지면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애초에 내가 의도한 장편소설은 샤카무니 가르침의 영역에서 인간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바로보기를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나의 의도와 판이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이보리를 만들어낸 소설가가 자조적인 말을 하는 장면에서 우리에게 작가 본인을 투영한 소설가의 대사를 통해 조금 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실소를 자아낸다고 생각한다.
  
운명게임 2권에서 이보리는 잉카로 이름을 바꿔 커다란 모험을 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 사건을 전개시켜 나아가는지는 소설을 통해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한다.
지극히 철학적이지만 SF적인 이야기 전개로 극과극의 서로 다른 두개의 온도가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이보리와 소설과 그리고 상위 자아. 이들의 관계와 소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읽는 내내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게 만들면서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도 유지하는 뛰어난 기술을 발휘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자칫 내 서평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을 이보리라는 주인공이 겪게되는 흥미롭고 미스터리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인생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진실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이 소설을 통해 "나"와 "삶"에 대해 모두 같은 고민에 빠져 생각해보시길 추천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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