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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다음 문장을 읽어 보라. 이 책에 있는 실제 문장이다.
"우리는 끔찍한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맞서는 영원한 힘의 일부이기도 하고, 순진함을 초월해 악을 이해하면서도 악이 어두운 굴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영원한 힘의 일부이기도 하고, 혼돈에 맞서 그것을 생산적인 질서로 변화시키거나 지나치게 구속적인 질서를 포획해 혼돈으로 환원한 뒤 다시 생산적인 질서로 만드는 영원한 힘의 일부이기도 하다"
당신은 솔직히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이런 말들이 논리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과연 이런 문장으로, 이런 필체로, 그가 외치는 이른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나 있는 걸까? 이 사람은 뭘 하고 싶은걸까? 페미니스트, 조던피터슨 악플러, 사회주의자, 헤이터들을 그저 논리로 압살하고 싶은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더 이상 이 사람에게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글에서 방어기제가 느껴지고, 그렇기에 뭐든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 그저 뱅뱅돌려서 어렵게 말하고, 고대서적에서 읽은 것들만 죽죽 늘어놓고, 혹시 모르니까 A와 B 둘다에 양다리를 걸쳐놓는식.
자신의 완벽한 이론을, 자신의 복잡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정신체계를 책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알아봐 줄거라는 그 착각이 이 책을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봐라. 역사적으로 위대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만인들이 알기쉽게 그리고 기억에 남게 아주 임팩트하게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조던 피터슨의 문체에서 풍기는 특유의 강박증, 스트레스는 그의 작가로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심리학적으로 어떠하다, 유전학적으로 어떠하다, 역사학적으로 어떠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행동해야 옳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도출했다고 그 말에 반드시 항상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실리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는 훌륭한 임상심리학자 이자 심리상담가 일수는 있겠지만, 그의 문체는 죽어있다. 위대한 걸작을 쓰려고 욕심부리다가 생긴 기형적 결과물이다. 이런식이면 생명력이 없는 수많은 다른 책들과 다를 바가 없는거다.
다음은 또 다른 이 책의 한 부분이다. 내가 어록들을 모아놓은게 아니라 저 말들을 한번에 우다다 말하는 부분이 실제로 책 중간쯤에 있다. 이런식의 전개방식이 피터슨 마음속에 깔려 있으니 글에 영혼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겸손하라. 방을 청소하라. 가족을 보살피라. 양심을 따르라. 바르게 살라.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일에 전념하라. 이것들을 잘 해냈을 때 더 큰 문제를 찾아 도전하라. 여기에서도 성공한다면 더 야심찬 계획으로 이동하라."
문제는 이런 말들이 틀렸다는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이런 문장을 읽고도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있다. 내가 알기론 사람은 진지하게 오랜기간을 두고 한 문장을 기적적으로 깨닫고 체화시킬수 있는데, 이건 또 무슨 피터슨 방식일까? 지금 이 문장 방식은 자신의 지혜로 파악한 훌륭한 교훈들을 "옜다, 받아라" 식으로 우리에게 자비로이 다시한번 상기시켜주는 꼴인데, 피터슨은 과연 알까? 곧 있으면 독자들은 그의 이러한 태도를 느끼고, 참고, 결국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임을. "책을 다 읽긴 했는데, 뭐랄까, 음... 아무튼 피터슨은 대단한 사람인건 분명해... 되게 대단한 책같아. 근데 그건 그거고, 아 내일 출근하기 싫다..." 왜 이렇게 되는것인지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자신이 몸소 겪은 산전수전의 내용들을 펼치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학문적으로 연구한 내용과 해석들을 펼치고 있다. 그것을 위주로 자신의 주장을 떠받드니까 설교로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은 설교에 바뀌지 않고 진심어린 동기부여 문장에 의해 바뀐다. 만약 조던 피터슨이 있어보이고 정교해 보이려는 모든 문장들을 집어치우고, 그가 연구를 열심히 했다는건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알았으니까 좀 적당히 어필하고, 자신만의 뿌듯한 어휘력으로 뭔가를 복잡스럽게 표현하려 들지 말고,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기도 어려워할뿐더러 몇몇에겐 그저 [캬]같은 감탄사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저 좀 확신에 찬 문체로 인생의 법칙들을 자신있고 쉽고 간결하게 펼쳤으면, 지금쯤 비교도 못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될수만 있다면, 반대파들이 피터슨의 논리의 허점을 공격한들 인터넷과 각종 매체에서 당신이 거품이네 마네 까내린들 무슨 상관일까? 지금은 결국, 자신의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예민해진 탓에 결국 여러곳에서 더 많은 공격을 받을 따름이다. (이에 수반되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던데 그는 아직도 이것을 일종의 자신이 짊어질 숭고한 무게쯤으로 여기는 중이다). 반대로 그저 사람들의 인생에 의미를 불어넣겠다는 그 본질에 집중한다면, 지금의 어딘가 공허한 조던 피터슨의 설득력보다 더 기적같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논리, 연구해석, 수치, 언어적 스킬들도 좋지만 그것이 결정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건 아니다. 게다가 한 챕터당 90퍼센트 정도 그것들로 꽉찬 모습은, "~~하라" 는 단순명료한 문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아서 공허하게 느껴지고, 따라서 간결함의 마력마저 잃었고, 결국엔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지나면, 피터슨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또다시 미지근해 지고 의미를 잃어가고 삶을 헤매게 되는것이다.
나는 조던 피터슨의 책을 읽고 삶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한다. 그들을 부정하는건 아니다. 대신 이제는 그 책을 넘어서고 다른 것도 많이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책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