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개정판 손철주의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오픈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문화생활'을 한다고 할 때 많이들 전시회를 언급한다. 전시회 가서 그림 몇 점 보고 오면 괜한 예술적 영감도 좀 얻어오는 것 같고, 할 얘기도 좀 생긴 것 같고 무언가 얻어온다는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그림 자체에 집중해서 그 그림들과 교감하며 보시는 분들은 드문 것 같다. 일반 관객들이 봤을 때는 "잘 그렸으니까 전시되어 있나보다", "뭔가 뜻이 있겠지" 라는 막연한 감상만 가진 채 돌아오기 마련인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제목부터가 송곳같다. 전시회와 비슷한 선상에 놓인다고 볼 수 있는 영화, 연극, 뮤지컬은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야기를 둘러싼 다른 이야기들을 몰라도 금방 따라가고 얼추 재미있게 볼 수 있는데 반해, 그림은 그런 것들을 모른다면 사실상 그 감상의 폭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표현은 어디에든 쓰이고 있지만 그림 감상에 있어서는 그런 점에서 그 쓰임새가 꽤 적합해 보인다.


이 책은 작품에 대한 감상과 그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들로 엮여 있어 미술 초심자들까지도 매우 쉽고 편안하게 그림을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들의 독창적인(이라 쓰고 괴짜스럽다라고 읽는) 정신세계, 그런 그림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그리고 평론가답게 군데군데 서려있는 그림(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날선 비판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현학적이고 딱딱한 문투가 아닌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전개 방식에 감탄하며 읽었다. 설명을 받쳐줄 풍부한 삽화가 올컬러로 실려있는 건 덤이다!


우리 사람들도 수많은 군상이 있듯, 미술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액션 페인팅'이란 이름 아래 그림을 그린건지 뿌린건지 모르는 기이한 작업 방식을 가진 미술인도 있는 반면, 최고의 쪽빛을 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무명을 찾아다니는 섬세하고 우직한 미술인도 있다. 이런 사람이든 저런 사람이든 그저 '보통내기'에 지나지 않았다면 결코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창작에 대한 남다른 집착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미술인들이 하나의 뿌리를 갖는 듯하다.


미술관에 들렀을 땐 작품 아래 붙은 이름표에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누군지 몰라도 감동의 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만일 누구 작품인지 몰랐기 때문에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작품은 결코 고전이 될 수 없다. 고전이 뭔가. 시대가 지나고 패션이 달라져도 여전히 현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상이 바로 고전 아닌가. (275p)


책은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지만, 작가님이 직접 하고 싶은 말은 '감상 이야기' 부분에 다 들어있는 듯하다. 많이 알고 있다면, 그 이후로는 본인이 느끼는 그대로 그림을 이해하면 된다고 말한다. 모든 예술품이 그렇듯, 작가는 나름의 뜻과 의도를 갖고 만들었겠지만 결국 이해하는 건 관람자의 몫이다. '아방가르드'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기 위해 많이 지금부터라도 알아야 할 듯하다. 아는 만큼 보고, 보이는 대로 느껴서, 그림이 가슴 속으로 '제대로' 들어올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취향은 어떤 잘잘못을 가릴 잣대도 갖다댈 수 없는 것이기에 감상자는 모름지기 자신의 판단을 떳떳하게 밝혀도 부끄러울 게 없다는 얘기다.(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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