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아이덴티티 (1988) - [할인행사]
로저 영, 리처드 챔버레인 외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우연히 개봉 후 몇 년 뒤에 보게 된 헐리우드 영화 '본 아이덴티티'.

재미는 있었지만 미진했다.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이유는 바로 이 작품 TV영화로 제작된 '본 아이덴티티'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크린판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행적을 더듬는다. 반면 TV판에서의 주인공은 갑작스레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물답게 피동적이다. 때문에 그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이고 그의 불안은 우리의 불안이다. 보다 자연스런 감정이입이 가능하다.

낯선 거리를 걷는다. 그런데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평범한 인물의 반응이 이상하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 나를 아냐고 물어보기도 어정쩡하며 때문에 불안은 더욱 커진다. 실제로 그 사람은 나를 모를 수도 있으니까. 내 착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가련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습격을 받는다. 목숨을 보장할 수가 없다.

이 작품 속의 첩보세계는 스크린판보다 훨씬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최첨단 장치는 없지만 그 세계의 가장 큰 자산은 아마도 정보원이라 불리는 인적 자원 그것일 것이다. 어느 곳에나 감시의 시선이 번득이고 평범한 이웃이 소리없는 밀고자 혹은 암살자일 수 있다는 것은 냉전시대를 통해 발전해 온 첩보세계의 어두움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혼잡한 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걷던 사람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상황과 유사하게 모든 주변의 모든 시선을 의심할 수 밖에 없고 때문에 어느 곳에서 죽음의 손길이 다가올지 불안한 처지에 대한 연출이 스크린판에서의 전문 살인자가 특정장소에서 광포하게 등장하며 막강한 힘으로 습격하던 액션과는 달리 음습함과 암울함을 더 설득력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것이 원작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극적 긴장감이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