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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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고 마는 이중법적인 두 단어 ‘현실’과 ‘꿈’. 늘 주위를 맴맴 돌며 도저히 떠나려하지 않는 저 두 단어에 소설이 이룩해낸 결과는 광명적 이었다. 현실에서 쓰러지는 내 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보려고 치면 내게 있어 꿈은 답답하고 막연한, 그 아련함 그리움 그 자체였다. 그런 꿈을 등지고, 텁텁한 매운 공기를 마시는 현실 앞에 굴복하고 마는 오늘의 나는 그저 뜨거운 열정만이 함께 할 뿐이었다. 소설을 읽은 후, 과연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꿈이었을까 현실이 이었을까.  

   소설의 상당 부분은 '나'라는 자가 스트릭랜드와의 대화, 그를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술가로서 ‘기이했던’ 그의 삶을 관찰 한다. 여기서부터 지극히 평범했던 그가, 돌연 변해 버린 모습을 소설에 발생시키며, 작가는 기인한 자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적거나, 소설처럼 그럴싸하게 꾸며 대는 방식보다, 오히려 따분 할 수도 있을 사실들을 그대로 서술 하며 그의 생활을 묘사하고, 그런 그의 예술의 혁명을 조망 한다. 그리하여 책은 여행지를 답사하지 못한 이들에게 독서를 통해 ‘그런 것’들을 낱낱이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마치 친절한 여행 책을 읽듯이 대변한다.  

  자, 여기서 ‘달과 6펜스’라는 언급이 전연 안 된 소설에게 항의 하며, 의미심장한 의미를 부여 하고자 한다. ‘달’ 그것은 ‘이상理想’이다. 고귀 하면서도 우리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열망 이자 소망이자 지독한 갈망. ‘6펜스’ 그것은 우리 곁에서 도저히 떠날 생각을 마지않는 지긋 지긋한 욕망의 ‘현실’ 이다. 바로 이 소설은 ‘달과 6펜스’ 이 사이에서 고민 하는 스트릭랜드로 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는 결국 달과6펜스의 결투에서 승리한 ‘달’을 안고 ‘6펜스’의 물질적 세계를 집어치운다. 그리하여 여태껏 보지 못한 풍경,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정착 시키고, 마침내 그곳에서 안식처를 발견하여, 남을 만한 기록의 작품들을 창조해내고 사망 한다.

  나는, 스트릭랜드로 부터 특이하게 꾸민다 해도 감출 수 없는 독특한 정신과, 영혼의 깊은 비밀을 읽어냈던 자아와, 그것을 비로소 구현 해 내기 위한 개성의 초연, 그러한 ‘귀의歸依’가 그 자신 ‘꿈’의 창조적인 수단의 발로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스트릭랜드라는 인간자체가 현실을 빗나간 또렷한 정신의 주체(主體)자 로서 광의적이지만, 자신의 열망을 표출하여 꿈을 이룩해내었다는 원초적 진실을 목격 했다. 현실과 꿈 앞에 갈증을 폭포수처럼 일으키고, 현실과 꿈에 대한 지루한 결투를 수 없이 받아야만 하는 24살의 나는 책 을 덮고 난 후 묵묵하게 현실 VS 꿈의 결투를 공연스레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나니, 묵언의 쳇바퀴가 인생이란 일루전이 아닌 현실 그 자체라고 어디 한 번 너도 미쳐보라고, 사기 같은 속삼임으로 내 마음을 수 없이 이끌었다.

  정작 ‘그’는 읽고 있는 나에게 온갖 반항심을 불러 일으켜 그의 천재성을 반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내 스스로가 알아야 할 그 무언가를 소설의 주체자로서 환치시켜 보여 주었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은 과연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20세기의 풍부한 문물의 자원 속에서 낭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막막한 88만원의 세대 앞의 벽 앞에 무던히도 좌절 해야만 하는 내 20대의 청춘은 '달'에 정착하여 적성에 맞는 생업을 하다 에누리 없는 인생을 살다 간 현현한 그를 통해 꿈에 대한 숙망을 앙금처럼 남겼다. 우습지만 냉철한 현실 속에서 ‘시’라는 예술을 품고 있는 내 마음에 이 소설은 곱게 꽃으로 포장되어진 선물이 되었다. 그것이 거침없는 열정의 개성으로 가득한 것이건, 냉정한 근시안이었건 말이다.

  나는 공연스레 이 시대의 즉자적인 존재로 재탄생해야 할 것만 같아, 날개가 돋기를 간절히 술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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