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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말들 - 인생에 질문이 찾아온 순간,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
태지원 지음 / 클랩북스 / 2022년 9월
평점 :
마음이 편해지는 책이다. 태지원 작가님의 에세이는 막연한 희망과 격려가 아니라서 마음이 편해진다. 내 생각이지만, 바꾸고 싶은 자신의 면면과 지겹도록 부대껴 본 사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아닌가 한다.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할 때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 안심시켜주는 동행자를 만나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현재를 똑바로 보면서도 1만큼의 과장되지 않은 희망과 현실에 발디딘 긍정을 더하게 된다.
진솔한 책이다. 전작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도 그랬지만, 세상의 기준에서 ‘어둠’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경험이나 감정,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주시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누구나 느끼면서 살지만 막상 꺼내놓으려 하면 망설이게 되는 부분들. 그래서 이 책이 단단하게 느껴지고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저자의 일상 경험과 사유가 그림, 화가의 특징과 만나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영감을 자극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경력이 쌓이면서 점차 여러 상황에 자신의 경험을 대입해 쉽고 빠른 결론을 내게 되고 꼰대에 가까워져 간다고 느낀 경험을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제시하며 설명한다.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에 따라 모든 풍경이 변할 수 있음을 알았’던 인상파 화가들처럼, 모든 답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라짐을 알고 세상을 바라볼 때 자신의 좁은 세계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을 우리는 그림을 통해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하나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시대를 떠나 내가 직면한 문제들의 대부분을 누군가 앞서 고민했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결법을 찾아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프롤로그를 보면 쉽지 않은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그림을 들여다 봤다는, 그림이 단단하면서도 다정한 말을 건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저자의 말이 있다. 책을 읽고 나니 그 마음이 내 마음처럼 공감된다. 명화에 대한 지식이 얕은 나로서는 다양한 화가의 생애와 그림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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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르손의 그림을 보며 깨닫는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인생의 한쪽 끝이 구겨질 수는 있으나, 통째로 손상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엉망으로 휘저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도 아닐 것이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뒤따르고, 뼈아픈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걸 뛰어넘는 선택지는 늘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냉소와 조소, 열등감, 상처의 투영을 택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선택지 대신 사랑과 온기, 따스함이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고르는 방법도 있다. 229쪽_‘상처를 사랑으로 바꾸고 싶다면’에서
언젠가 읽었던 양귀자의 『모순』에 나온 글귀가 기억난다. 사람들은 타인이 준 상처를 반드시 받아야 할 빚으로 여기고, 오랫동안 기억해야 할 큰 은혜를 빨리 잊는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인생 장부책 계산은 이기적이기 쉽다는 말이다. 내가 모든 관계에 공평한 셈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가깝다. 246-247쪽_‘인간관계에 대차대조표가 필요한 이유’에서
인간은 인생의 불행, 시련,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미래를 예측하고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어쩔 도리 없이 그저 삶을 버텨내야만 하는 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 시험이나 취업에 연거푸 떨어지거나, 가까운 이와 이별하거나 우울하고 고립된 시간을 지나는 시기. 우리의 마음은 하강곡선을 그린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만 찾아오는 깨달음이 있다.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마음이 허공에 떠 있는 시기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타인의 고통과 힘겨움이 비로소 이해되기도 하고, 내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해석해보며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되기도 한다. 297쪽_‘허약한 게 아니라 단단해지는 중입니다’에서
가끔 선택의 기로에 놓여 괴로움에 빠질 때가 있다. 선택에 따른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산을 거듭한다. 그러나 모든 걸 다 쥐고 싶다는 전제를 밑바탕에 둔 계산은 의미 없는 경우가 많다. 책임질 것만 짊어지고 가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어차피 미래는 내 의지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흘러가게 마련이며, 어떠한 결과라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순간은 온다. 308쪽_‘선택의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