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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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베를린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다룬 <베를리너> 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베를린에 대한 묘한 동경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던 중 tvN 예능에서 만났던 베를린 중심의 홀로코스트 추모비, 영화 <베를린>에서 남북의 첩보 요원들이 대치하는 상징적 도시,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서 만난 베를린 장벽과 독일 통일을 보면서, 유럽의 하나의 도시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베를린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베를린, 베를린>의 서브 타이틀로 적혀져 있었던 "분산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는 사실 나로 하여금 아직까지도 내가 알지 못하는 베를린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책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는 글에서, 작가는 베를린 장벽으로 분단되기 이전의 베를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분단이 완전한 차단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베를린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자 (p.8) 했다고 한다. 나의 기대와는 달랐던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히려 그 덕분에 책속으로 더 빠져들었다.

이 책은 1945년 종전이후 4대 승전연합국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베를린이 1991년 6월20일 통일 독일의 수도로 다시 하나가되기까지의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베를린, 그리고 지금의 독일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독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1.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베를린은 4대 승전연합국에 의해 분할점령되었다. 형식적으로라도 분할점령된 구역 간의 자유로운 교통과 단일한 노동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이어갔다. 

2. 서베를린은 동독 구역내에 위치하여 섬처럼 존재하는 곳이었으며, 서독이 아닌 특별 지위를 보장받는 도시국가가 되었다. 베를린 봉쇄에 대비하여 '시정부 예비재'라고 불리던 저장고를 독일이 통일이 되던 1990년까지 유지했다. 

3. 서베를린은 동,서독간의 지속적인 우편 교류의 중심이 되었고, 도시 기반 시설을 나눠 가졌던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은 시설 유지를 위해 실무 기술자들이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4. 서베를린 시의회 의장에서 연방정부 수상이된 빌리 브란트 , 그는 신동방정책 , 다름은 인정하는 합의, 통행증 협정, 통과협정, 여행방문협정 등 다양한 업적을 세웠지만, 무엇보다도 사죄할 줄 알고, 역사에 기록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5. 분단 당시, 서베를린의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그곳의 젊은이들은 군면제를 받았으며, 병역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서베를린 (군면제)으로 이주, 그 곳에 대안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서베를린을 자유로운 문화와 예술의 공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6. 서독에서는 68운동을 통한 과거 반성과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 일상적 차원을 포괄하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의 민주화가 요구되었고, 동독에서는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추구하는 개혁적 사회주의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에서도 시위가 가능했다니, 중국이나 북한을 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각자의 저항운동이 독일 통일을 이끌었다.

7. 통일 독일에서 돈으로, 정책으로 할 수 있었던 일들은 오히려 쉬웠다. 오히려 동,서독간의 임금, 교육, 조직문화와 작업방식 등의 차이에서 오는 시민들간의 갈등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8.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독일 대도시 중에 가장 가난한 도시에 속한다. 빈곤율이 높고, 수많은 이방인들과 이민자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베를리너들은 다양성의 풍요로움 속에서 멋진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분단국가이면서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의 역사가 안타깝다. 전쟁이 없었다면, 어쩌면 우리 역시도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고, 교류를 하면서 살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도 “빨갱이”라고 명명되기 이전에, 공동체로써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통한 복지 정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최소한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의 정부를 보면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합의=빨갱이라고 보는 숱한 정치인들을 보면 말이다. 우리나라에 빌리 브란트와 같은 존재가 지금껏 한번도 존재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게 안타까움을 넘어서 화가난다. 70년은 넘게 각자의 나라로 살아온 대한민국과 북한은 통일에 앞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해를 위한 평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이 책은 독일 역사를 중심으로 쓰여졌지만, 중간중간에 언급해주는 한국과 독일의 차이, 거기에 더해 <차이나는 클라스>의 김누리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현재 '통일'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좋은 가이드라인를 받은 것 같다. 김누리 교수님의 말씀처럼 586 세대 (60년대생, 86년을 겪은 대학생들)가 제발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남북정책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여전히 색깔론에 메여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그들은 민주주의를 이끌어 온 세대이지 않은가. 아주 조금 기대해 본다. 내가 너무나 평범한, 힘없는 국민임을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함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교류와 협상 자체를 중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로 견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합의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협상을 진행했다. 정치적 이해가 대립하는 민감한 내용은 처음부터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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