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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빈 지음 / 놀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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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로퀜스와 호모 루덴스가 만나는 어느 지점에 개구쟁이와 삶을 내려다보는 현자의 눈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 속의 장면이 글로 화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힘은 시인의 성실하고 끈질긴 시선 속에 나왔다 할 것이다.
독자의 시선으로 그 감성에 동참하고자 하면 시인만큼 낮은 위치에서 더 깊이 더 뭉근히 바라봐야 할 텐데 아무래도 그럴 자신은 접어두는 게 좋겠다. 디카시계의 '기린아'라는 그의 시집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그저 그의 언어유희에 한정없이 솜사탕처럼 녹아나는 독자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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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B에게
김영빈 지음 / 놀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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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B에게> -김영빈(놀북)

매일의 살이가 바빠지면서 한 달에 열두 권 읽던 책을 일 년에 열두 권밖에 못 읽을 만큼 하루하루가 팍팍해졌다. 생기를 놓아버린 화분처럼 나는 연말에도 계속 메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선물처럼 접하게 된 사진시집. 국내의 한다 하는 디카시 대회를 두루 휩쓴 이력답게 델리스파이스의 곡을 멋지게 소화할 줄 아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인 그의 시집엔 미용실 바닥에서도 달의 머리를 깎는 미용사를 불러내거나 꽃사슴 잔등에 구절초를 얹을 줄 아는 천상 시인이 턱하니 들어앉아 있었다. 언어유희의 재미를 시로 만드는 재주, 무심한 발자국 하나, 물방울 하나에도 숨결을 불어넣는 이 시인의 재주는 비슷한 연배의 모지락스런 내 감정을 뒤흔들어놓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피하지방에 시의 층을 한 겹 더 가진 인류는 따로 있는 건가. 그는 이제 막 첫 시집을 애송이 시인에 불과하지만 인생을 그리는 덴 이미 중견화가인 듯하니 재주 많은 그의 다음 시집을 기다려봐도 좋을 듯하다.

그의 눈길이 저 높은 곳, 아득한 곳을 향하기보다는 낮은 곳, 보잘것 없는 것들을 향해 있다는 것이 이 시집을 읽는 우리들에게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뜨르르하게 자랑할 것이 없어 큰 목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는 B들에게 잊어버린 것, 잃어가는 것을 애써 지우려는 세상 모든 B들에게 너희의 삶도 단단한 명아주 지팡이가 되고 풍파를 이겨내면 모서리 덜어낸 둥근 돌이 될 수 있다고 대놓고 빌어주는 것 같아서 시집을 덮을 때쯤 마음 한켠이 환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든든해진다. 시집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세상 믿을만한 빽 하나를 얻은 듯한 만족감은 이 시집을 알아본 눈 밝은 당신에게 주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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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B에게
김영빈 지음 / 놀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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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해진다. 시집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세상 믿을만한 빽 하나를 얻은 듯한 만족감은 이 시집을 알아본 눈 밝은 당신에게 주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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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 2020 우수환경도서. 201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조혜원 지음 / 산지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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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 -조혜원(산지니)

 내가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안 되는 SNS 친구 중에 유독 농부들이 많다. 자연 속에서 흙에다 떨구는 땀방울의 가치만큼 거두어 들이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이 좋아서 번듯한 직장 뽐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빈도로 친구 수를 늘려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조혜원 님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줄 알았다. 장수 산골로 귀촌한 지 얼마 안 된(알고 보니 5년째...^^) 젊은 귀농인, 흥이 많고 감사한 일이 많고 자잘한 것에 걱정도 많은 새내기 농부티가 철철 나는데 수시로 올리는 사소한 나물 이야기를 참 찰지게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었다.

이랬던 그녀가 책을 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물론 내가 아는 저 농부 페친들은 대개가 힘든 노동의 과정을 글로 승화시키고 땀방울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게으르지 않은 분들이라 누가 됐건 어느 순간에 책을 내밀어도 이상할 게 없는 분들이긴 하다. 책이 나오면서 언론에서 말하는 그녀의 전력은 다채롭기까지 하다. 아이에게 사줬던 국어사전도, 세밀화로 유명한 그림책 시리즈도 그녀가 다녔던 출판사의 것이란다. 이런 과거를 몰랐으니 책이 나왔단 말에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이 책은 귀촌한 산골 마을에 적응해가는 산골새댁의 전상서이자 초보 농꾼의 분투기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그램이 조직과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로망이 되기도 하지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생각처럼 녹록한 일일 리 없다. 숱한 실패를 경험하면서 배우는 기쁨을 중히 여기고 자연에서 주어지는 것들에 감사하는 자세가 참 남다르게 다가왔다. 최소한 씨 뿌리는 만큼은 거두어야 한다고 욕심을 낼 만도 한데 그녀의 생활에는 그런 일반적인 욕심이 없다. 김장용으로 심은 배추를 다 파먹은 배추속벌레를 잡아내면서도 죽이지 않고 던져버리고 ‘망사배추’가 탄생한 데 대해 허탈해하지 않는 것을 보고 욕심 없이 주어지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그녀를 행복으로 이끄는 힘이란 걸 알았다. 땀과 힘을 더하는 데에도 이익이 남지 않는 생산활동에 대해서 무척 화가 날 법 한데도 작가는 그런 여지없이 기쁘고 즐겁다. 꽃을 따고 덖어 꽃차를 만들고 쑥을 뜯어 데쳐 갈무리하면서도 생각은 내내 주변사람들에게 나눌 것을 생각하고 그 마음으로 즐거워한다. 이웃에게 얻은 음식을 어떻게 보답할까를 궁리하며 한 발짝씩 농꾼이 되어가는 그녀의 삶은 더 말하지 않아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분명하다.


 농사짓는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이사간 후로 나는 자식으로서보다 +1의 노동력으로 기능했던 것 같다. 성실하며 꾀를 피우지 않으며 웬만한 어른 하나랑 맞먹는 절대적 어린 일꾼, 그때는 그래야 사랑받는 것인 줄 알았다. 절대로 농사꾼한테 시집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 시절의 비장했던 결심이 뜻대로 이루어져 나는 도시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팍팍한 아스팔트적 생활을 하다보니 아쉬워지는 대목이 한둘 아닌 삶이 되어가고 있다. 더 쫓기고 더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구덩이에서 늘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 퇴직 후만 바라고 사는 현대인에게 전원에서의 삶이 또다른 로망이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귀촌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닌 건 분명하다. 행간에 깃든 그녀의 땀과 눈물과 한숨을 엿보면 말이다.


 그래도 사계절 나물밥상을 차리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생태주의를 실천하며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그녀의 삶을 지지한다.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된다. 그녀처럼만 산다면 말이다. 된장 담고 메주 띄우는 그녀의 ‘청산별곡’이 내내 씩씩하게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이렇게_웃고_살아도_되나

#산골아낙의_청산별곡

#지식인의_귀촌은_실수투성이

#그래도_배워가는_삶이_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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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꿈 산지니시인선 4
조향미 지음 / 산지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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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꿈 ★ -조향미(산지니)

얼굴 한번 못 보아도 마치 이웃인 것 같은 사람들이 가끔 있다. 특히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을 때 그 마음은 무게를 더하게 되는데 내가 사는 지역의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라는 시인의 SNS를 가끔 방문하는 나에게 이 시인의 새 시집은 남다른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온누리에 평화의 조짐으로 만화방창한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런 날들을 맞이하기 위해 교육의 현장에서 분투해온 시인의 눈길이 고요하게 들어앉은 시들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사의 소음에서 잠시 해방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시는 어렵다고 느낄 만한 엄청난 함축성과 은유, 상징성 따위를 걷어낸 담백한 시어들을 대하노라면 이 시인의 성격도 짐작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간 시인에게도 많은 굴곡이 있었던지 초반에 언급된 시어들은 그녀의 근황을 짐작하게 한다. '고통은 신에게로 열리는 문'(<기도>)임을 깨닫게 하는 항암치료로 인해 '밥 한 그릇이 태산같다/ 죽 한 그릇이 태산 같다'(<밥 한 그릇>)는 시간을 견디어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무제한은 신의 영역'이며, '생은 제한적이어서 이렇듯 애틋한 것'(<무제한>)이라고 말하며, 대단한 걸 욕심 내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안 하기'를 소망한다.

떠오르는 태양에 경배 드리기
지구의 원주를 따라 슬렁슬렁 걸어보기
풀 뜯는 염소 떼와 말똥히 눈 맞추기
모래밭에 갓 돋은 풀싹 쓰다듬기
지평선 밖으로 팔을 뻗어보기
게르 천장으로 별빛 헤아리기
가만가만 내 숨소리 듣기
크고 높고 무한한 것
작고 낮고 여린 것
경외하고 경탄하기 고요와 마주치기
정녕 아무 것도 안 하기
-<아무 것도 안 하기> 부분

'아무 것도 안 하기'는 시인 자신의 소망이지만 그것은 결국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좇아가느라 허겁지겁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다. 쉴 새 없이 몸을 놀리고 손 안의 휴대폰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 부단히 앞만 향해 걷고 뛰기를 요구당하는 우리들의 '안'을 응시하라는 가르침이 분명하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실상은 지구의 원주를 헤아리는 엄청난 일을 하라지만.^^) 내면의 자아를 들여다보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쓰라는 자기 계발서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이 시집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고요한 자기만의 세계와 독대해 볼 것을 다짐하게 된다다.

그러나 시인의 눈길이 시인 자신에게만 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2부의 시들은 촛불 집회와 역사 교과서 검정 반대, 철탑 시위 노동자, 장애인 인권운동가, 밀양 송전탑 마을의 주민, 세월호 희생자들, 6.25 참전 희생자, 독거거노인 등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시대적, 사회적 현실에도 골고루 시선을 나누어 주고 있다. 문학의 사회성에 책임을 다하는 시인의 그윽한 시선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시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어쨌거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하지만 섣불리 오지 않은 여름이나 가을을 미리 예견하는 것은 '생을 속절없이 가불하는 일'(<감나무 봄>)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럴 지도! 햇볕 좋은 날 빨래를 널고, 비 오는 날 동래 시장에서 술동무를 벗삼고, 달그락 거리는 저녁 밥상을 마련하는 일련의 줄지어선 일상이 우리에겐 보다 훨씬 더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한바탕 속절없는 헛된 꿈이라고 가르칠 '봄 꿈'일지언정 그 꿈이 잠시라도 따스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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