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킴
황은덕 지음 / 산지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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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킴 ★ -황은덕(산지니)

화합과 번영의 표상이던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지 삼십 년만에 평창동계올림픽이 '하나된 열정'의 기치 아래 그 뜨거운 열기를 사방에 내뿜으며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지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안전과 자유가 보장된 땅에서 전 세계인이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을 자아내는 것을 보는 일은 참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시골 처자들의 분투가 빛나는 종목이 있어 전 국민의 환대를 받으니 이전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여자 컬링 의 'TEAM KIM'이 그들이다. 곱상한 외모에 깃든 냉철한 판단력, 승리를 누적할 때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온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그 성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올림픽 첫 출전에 사상 최초의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뤄내었다.

그러나 즐거움과 감동의 순간을 지나온 내게 이들과는 다른 길에 선 KIM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으니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지난 주에 읽은 황은덕 소설집 <우리들, KIM> 얘기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빛나고 선진적인 나라로 성장한 이면에 6.25전쟁 이후로 쭈욱 해외입양 1위라는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다. 개인적으론 최진실이 나와서 눈물을 쏟게 했던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기억에 남고 홀트 아동 복지 병원 의사였던 조병국의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도 입양 현실을 떠올려 보게 한 인상깊은 책으로 기억된다. 한때 KBS 아침마당에는 친부모를 찾아온 해외입양아들의 애끓는 사연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특히 아이를 낳아 직접 키우지 못하고 버리거나 유폐하거나 시설에 맡기는 사연에 대한 얘기를 직전에 읽은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보아 그런지 이 소설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더 나쁜 경우가 될 수도 있었어." ...'전 세계로 흩어진 우리가 서로서로를 위로할 때, 혹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함부로 추측할 때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실제 인생에서 또 다른 경우의 수나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p.63)
지켜만 볼 뿐, 어설프게 공감 운운할 수 없는 독자 모드로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지켜보게 하는 문장의 여운을 느낀다. 창녀나 부랑자, 마약 중독자같이 더 나쁜 경우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음에 안도하지 못하는 것은 축복받은 출생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버려진 기억 자체를 돌이킬 수 없음을 슬퍼하기 때문이리라.

벨기에 한인 입양인 모임에 온 KIM들...
파란 눈을 한 사람들 속에 검은머리, 누런 피부는 유독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벨기에에서 유행했던 해외입양 붐을 타고 한국인을 입양하는 것이 부와 휴머니즘을 상징하는 전시적 효과로 인기였다고 하니 더욱 씁쓸해질 수밖에 없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 대표작인 <우리들, KIM>은 지인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건너가 생모를 찾고 친부의 가족들을 만난 화가 KIM이 본연의 자기 삶 속으로 되돌아와 안도한다는 내용이다.

4편의 입양 관련 이야기와 3편의 불륜 이야기는 동떨어진 주제가 아니라 고리처럼 맞물려 있다. 사랑에 과감했던 남성들은 사랑 그 이후엔 다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사랑은 함께 했는데, 뒷처리를 여자가 옴팡 뒤집어쓰는 이 구조는 분명 잘못됐다. 상대를 한때의 불장난, 노리갯감으로 여긴 결과는 미혼모, 불륜녀, 상간녀, 사생아를 양산해낸다. 그러고도 그들은 불리한 때 가부장제라는 안전한 방어막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그만이다. (혼전 임신이 축복받은 지는 실로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결혼 약속이 돼 있는 경우고 그렇지 않으면 미혼모 도움 시설에 가거나 집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는 그 어디에도 없고, 모든 뒷감당은 아이와 함께 남은 여성들의 몫으로 남겨지는 현실. 그래서 '(사귀던) 오빠를 안 시간보다 뱃속 아기와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셈이었다'(p.11)는 소녀의 자조는 허탈하기까지 하다.

이후에 버려진 아이들, 해외입양된 아이들이 그들이 속한사회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양부모의 학대 속에서 파양을 당해 낯선 땅에서 무국적자로 남거나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도 다수 목격된다. 그러함에도 이전 세대의 불행의 씨앗인 이들이무너지지 않고 양지를 향해 일어서는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따스함이 때로 그 무엇보다 큰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이 소설을 한 조각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

동계올림픽을 시청하면서 금메달을 딴 해외동포에게 환호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양산해낸, 수많은 버려진 KIM들을 생각하면서 귀화한 선수들에게도 차별없는 호혜적 평등과 애정을 보이는 사회가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환호받는 TEAM KIM만큼 우리가 저버린 KIM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시선을 나누었으면 한다. 더불어 이 땅을 희망삼아 찾아온 새로운 KIM들에게도 아낌없는 성원과 차별없는 세상을 보여주어야 할 타이밍이 되었다. 나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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