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 맑스 박사 학위 논문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2
칼 마르크스 지음, 고병권 옮김 / 그린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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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을 읽다가 자연철학자들의 기묘한 생각이 내 취향과 비슷한 듯하여 들춰본 맑스의 박사학위논문.
쾌락주의자로만 알던 에피쿠로스가 엄청난 내공을 지닌 자연철학자 겸 레알 유물론의 창시자였다니.. 붓다+스피노자+잭슨폴록이 뒤섞인 듯한 괴상한 느낌의 철학자
"천체들의 영원성은 자기의식의 아타락시아를 방해할 것이므로,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필연적이고 엄격한 귀결이다."111p
태양이 영원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나의 평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니..@.@ 거꾸로가 아닌가..

[직선으로부터의 원자들의 편위는 에피쿠로스 철학에 토대하고 있는 가장 심오하고 핵심적인 결론이다.(편위:클리나멘, 미세한 편차, 어긋남, 사선)]
‘‘만일 이것〔원자들의 편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 원자들에 대한 원자들의 어떤 충돌도, 충격도 없을 것이고 / 따라서 자연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할 것이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이것 때문인갑다. 무수한 원자들의 편위가 일으키는 만남과 조합, 반발과 해체의 무한한 사건의 장인 자연에서는 영원한 것(천체로 상징되는 신, 존재, 일자 등)이 오히려 공포와 고통의 원인이라고.. 긴가민가스럽군..

[직선으로부터의 편위는 자유의지이고, 특정한 실체이며, 원자의 진정한 질이다.281]
"운명의 사슬을 끊어버릴 새로운 운동을 위해 / 원자들이 편위를 하지 않는다면 / 인과의 사슬은 영원하리니"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24살 갓 대학을 마친 청년 맑스가 에피쿠로스 어록에서 추출한 엑기스가 이거겠지.. 무한한 원자들의 흐름, '원자'라는 단어에 자본 노동 개인 여성 소수자들을 넣어보라. 심지어 고통같은 감정의 원자들도.. 가령, "쾌락은…고통으로부터 편위한다"<에피쿠로스>

[이 힘, 이 편위는 원자들의 반항이고, 고집이며, 가슴속의 어떤 것이다... 제우스가 쿠레테스의 사납게 날뛰는 전쟁춤 아래서 자라났듯이, 이 세계도 원자들의 떠들썩한 전쟁놀이 아래 있는 셈이다. 283]
책 뒷표지에는 "맑스, 그는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를 만나고 나서 유물론자가 되었다!"라는 문구가 있다. 유물론자가 되고 싶진 않지만 루크레티우스는 땡긴다.
가라타니 선생이 <철학의 기원>에서 자연철학은 이오니아 지방의 정치원리인 이소노미아(무지배 no rules, 완전한 자유-평등)를 대변하는 사회철학이기도 하다고 했는데, 확실히 아래의 시에 그런 기운이 감도는 듯도..

"수세기 동안 지탱해온
세계의 모든 물질과 구조는 붕괴할 것이다.
체험보다 이성이 당신에게 이것을 확신시키기를… 바로 세계는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붕괴될 것임을."
"…나는 안다, 하늘과 땅 또한 그것들이 태어난 날을 가졌으며, 끝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음을."
"결국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신들의 사원과 상들(Bilder)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 어떤 신성한 권력도 운명의 한계들을 늘릴 수 없고,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는 어떤 싸움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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