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 새물결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라캉의 눈으로 본 헤겔은 포스트-맑스주의자!!
엥? 헤겔이 맑스보다 후대사람이던가? 저걸 증명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고 서문에서 얘기하는데, 이양반의 무지막지 많은 저작이 데뷰작인 이 책의 주제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하니 저 문장만 잘 이해하면 전체를 뚫겠다. 근데 저걸 이해하는게 곧 현대를 이해하는거 아닌가? 그러자면 양자역학만큼이나 어렵다는 라캉과 또 그만큼 어렵고 고리타분한 헤겔과 말많고 탈많은 맑스를 알아야하니 삼중고.
근데 세계적 선수는 역쉬 뭔가 다름. 기본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논증의 예들이 일상생활사, 꿈, 유머, 영화, 소설 들이라 현실감과 읽는 재미가 있다. 라캉에 대한 개설서의 역할도 하고 현대 정치론으로도, 헤겔변증법에 대한 혁신적 해석으로도 좋은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은 라캉의 환상공식 <$◊a>에 대한 긴 해설서일지 모른다. S에 빗금친 $는 무의식의 주체를 의미하고 a는 욕망의 원인-대상을 나타낸다. 대상에 의한, 대상을 향한 주체의 욕망을 의미하는 저 공식을 환상공식이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대상a는 엄마와 합일된 상태에서 분리된 아이가 그 결여를 메우기 위해 찾는 무엇이다. 그것이 신체 곳곳에 국소화된 것이 성감대이고 상징화(언어화)하지 못한 무의식적 욕망의 찌꺼기가 대상을 이룬다. 라캉이 프로이트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 바로 결여를 주체만이 아닌 타자(나 아닌 모든것), 상징계로 이동시킨데 있다. 상징계 혹은 사회 자체에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 공백을 메우고/감추려고 구조화된 것이 욕망 또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니까 이데올로기를 라캉의 대상a로 설명한 것이 책의 골자인 셈. 자유평등, 전체주의, 반유대주의(혹은 무슬림)에서 최근의 냉소주의까지.. 그런 대상이 숭고한 까닭은 접근 불가능한 엄청난 향유(고통속의 희열, 주이상스)를 품어 죽음충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근친혼, 대의적 희생, 대자연에 대한 위험한 모험, 모비딕 등)
상징화될 수없는 결여, 공백으로서의 현실을 라캉은 실재(Real)라고 한다. 실재가 상징계에 침투하는 사건이 바로 악몽이고 트라우마고 그것에 대한 주체의 노력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대상a는 따라서 증상이기도 하며 그것은 불가능한 욕망이기에 환상이기도 하다. 이 환상을 가로질러 실재의 텅빔, 부재를 체험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목표다.
자본주의에서 해결 불가능한 증상을 발견한 이가 물론 맑스이고, 잉여가치(라캉의 잉여향유)를 둘러싼 적대가 증상의 중핵을 이룬다. 이 사회적 증상을 완전히 해결하려는 시도가 보편적 이상주의로 나타나는데, 자코뱅주의와 나치즘, 스탈린주의에서 보듯이 그것은 늘 파국으로 귀결된다. 왜 그럴까? 절대적 주이상스는 죽음충동으로만 가능하기에...
여기서 헤겔변증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는데, 오해와는 달리 헤겔의 '정-부정-합'에서 합은 절대이념의 '실현'이 아니라, 그것의 부정성, 무, 공백의 긍정으로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즉 현상은 실체(물자체, 이데아)가 무, 공백임을 감춤으로서 현상한다는 역설. 실체의 절대적 부정성을 감추는 것을 숭고한 대상이라고 하며 헤겔은 이를 '정신은 뼈다', '국가는 군주다', '신은 예수이다'라는, 주어와 술어가 양립, 비교 불가능한 무한판단의 형식으로 제시한다(이 대목에서 불현듯 불교의 '아공법공'이 떠오른건 나만의 착각일까. 부처는 똥막대기다).
그렇게해서 기존 맑스주의에 들어 있던 관념론적 요소(보편적 이상주의, 소위 '완전한 해결' 등)를 비판하는 유물론자로서의 헤겔이 등장한다. 나아가 타자(절대이념,실체)의 결여와 부정성 폭로하여 대상에 의한 욕망 실현을 회피하는 헤겔은 히스테리증자이기도 하다고..
'실체(절대이념)는 주체이다'라는 헤겔의 표어는 라캉의 '주체는 실재(Real)의 응답이다'와 만나 피와 살을 얻어 맑스로 다가간다.
가장 위험한 공산주의자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저자가 오히려 그것의 불가능성을 얘기하는 듯한 모골이 송연한 책.
국내에는 2002년에 나와 유행하다가 번역의 오류가 많아 재작년에 다시 나왔단다. 최근 사회적 적대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냉소주의, 반무슬림주의, 특히나 헬조선 정부의 철지난 애국주의 따위가 이 책의 여전한 적시성을 잘 보여주는 듯...
결론은, 우리 모두 히스테리증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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