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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건너온 약속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39
이진미 지음 / 다른 / 2023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불바다가 된 도시,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광란의 현장에 덩그러니 던져지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학생 마에다 린, 오래돼 보이는 만년필촉을 무심코 집어 드는 순간 황금빛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감싸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만다. 매캐한 연기에 쿨럭이며 주변을 살펴보니 땅이 갈라져 있고, 벌건 불길이 여기저기 넘실댔다. 애써 정신을 차렸을 때 그 풍경만큼이나 낯설었던 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 “조선인들을 잡아 죽여라!”
죽창과 일본도를 손에 든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린은 생각한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100년을 거슬러 대지진과 학살의 현장에 던져진 린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녀가 목격한, 지진보다도 더 끔찍한 그날의 참상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백년을 건너온 약속
간토 대지진 학살 100주년, 이제는 눈을 떠야 할 때
2023년 9월 1일은 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이 사건이 우리 국사나 세계사 책에는 나와 있지 않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커다란 지진 속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문제는 지진만이 사람을 죽인 범인이 아니었다는 점인데
혼란을 틈타 조선인들이 강도, 방화 등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들이 마시는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말도 안되는 증거 인멸이 시작되는 내용이다.

다른 누가 아닌 나의 이야기 우리는 어떻게 혐오와 싸워 나갈 것인가
중요한 건 아직도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자와 똑같이 2023년에 살던 주인공이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에 떨어지는 데서부터 《백년을 건너온 약속》은
의미가 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
이 역사를 모르는 독자들에게 한가지 사실과 안타까움을 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주인공을 일본인 학생으로 설정한 것 역시도 소설의 입체감을 높인다. 간토 대지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일본인 소녀를 통해, 독자가 피해자의 후예인 한국인으로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이처럼 《백년을 건너온 약속》은 분노와 울분을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100년 전의 학살 사건을 오늘날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더 나아가 지금 사회에도 만연한 여러 혐오 문제에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까지 스스로 고민하도록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