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PD의 미식기행, 목포 - 역사와 추억이 깃든 우리 맛 체험기
손현철.홍경수.서용하 지음 / 부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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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훌쩍 떠나는 주말여행이 좋아졌다. 구석구석 잘 뚫린 도로망 때문에 1박 2일 정도면 미처 몰랐던 우리 국토의 절경을 맛보고 올 수 있다. 굳이 맛본다‘는 표현을 쓴 것은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그 고장의 진미를 맛보는 걸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풍경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반자와 함께라면 음식은 때로 그 여행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반려자를 배려하다 보니 지난 해부터 다닌 여행의 테마는 일관되게 ‘남쪽으로 간다’다. 영월, 군산, 여수, 통영으로 돌았으니 가히 ‘항구로 간다’고 덧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여행을 가기 전이면 각 도시의 대표적 ‘음식’과 ‘맛집’을 검색한다. 이왕이면 관광객 중심의 식당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 위주로. 서울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그 지방의 토속색이 드러나는 메뉴로. 그러나 깨알같이 맛집 정보는 챙기면서도, 그 지역에 왜 그런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지, 요리법의 특색이 자리잡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드물다. 그러나 책 속에서 롤랑 바르트의 예를 들어 말했듯이 ‘안다는 건 곧 맛본다’는 것이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나는 그 사실을 빌 버포만의 <앗 뜨거워>를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뉴요커>의 문학기자였던 빌 버포드는 마리오 바탈리를 만나고, 그 매력에 휘쓸린 나머지 그의 주방에서 '지옥같은 1년'을 보내고, 그 맛의 원류를 찾아 이탈리아 투스카니로 떠난다. 그곳에서 푸주한(정육업자) 도제수업까지 받는다. 세련된 뉴요커, 아무리 요리를 잘해봤자 푸디(foodie)에 불과했던 그는 이탈리아 요리의 근원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칼을 잡고 새끼 돼지 한마리를 도살한다. 잘 나가는 잡지 기자를 그만두고 시골에 처박힌다. 과연, 왜 그랬을까. '카사링가'란 말이 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 지방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전통요리란 대개 손으로 만들어 손으로 이어진다. 그 맛의 기억은 그러나 장인이 죽으면 땅에 묻혀진다. 그렇기에 '음식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음식을 제대로 하는 것'은 이런 사멸에 저항하는 행위다. 아니. 이런 거창한 비유를 떼놓고 생각해봐도,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벌교 꼬막을 귀신같이 챙기는 우리 식구만 봐도.  


나는 아직까지 제대로 목포에 가보지 않았다. 저자인 세 명의 다큐 PD들은 목포야말로 ‘호남맛’의 진수라고 말한다. 목포는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개미(곰삭은 맛)’의 집산지이자 개성적이고 차별화된 맛집이 모여 있고, 1897년 개항 이후 근대와 현대 그리고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져,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재료의 맛을 꽉 잡아주는 참기름의 역할이나,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혀를 즐겁게 해주는 맛의 오케스트라(여기에 중요한 것이 발효의 과학이다)에 대한 언급은, TV의 숱한 음식 프로그램이나 여행 프로그램이 얼마나 겉핥기식 지식으로 우리를 호도하는지 보여준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식 이야기로 접어든다. 제일 먼저 민어. 크기와 굵기에서 일단 먹고 들어가는 민어는 목포에서도 비싼 값 주고 먹어야하는 귀한 생선이다. 활어 중심인 우리나라지만 민어만큼은 24시간 숙성시킨 선어회로 먹어야한단다. 이어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 그리고 ‘콧속이 뻥 뚫릴 만큼’ 해결해주는 홍어. 그리고 목포의 세발낙지. 가장 인상적인 건 탕탕낙지와 호롱구이다. 낙지를 소금물에 넣으면 바로 기절하는데 그 기절한 낙지를 칼로 탕탕 다져 달걀노른자와 참기름을 뿌려주는 그야말로 ‘목포의 맛’이란다. 그 외에도 목포사람들이 물 먹듯 먹는 콩물과 조기, 팥죽과 게살무침과 갈치, 한정식 부럽잖은 백반까지 속속들이 파고든다.


유명한 맛집부터 서민적인 맛집까지 저자들이 소개하는 맛집을 정신없이 눈으로 탐하고 나면 이내 허기가 몰려든다. 미슐랭 별 두 개 이상의 맛집을 본 것도 아닌데,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여진다. 재료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혜를 더한 요리들과 현지인들도 퍼질고 앉아 먹음직한 소박하지만 정감 가는 음식점, 이 풍부한 먹거리를 가능케 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 저자들이 깔아준 밥상은 넉넉하고도 감칠맛 넘친다.


세 명의 저자는 ‘관광지의 맛이 아닌, 맛보러 떠나는 여행’의 첫 미행지로 ‘목포’를 택했다. 즉 제 2, 제3의 도시가 그들의 ‘미식기행’에 걸려들게 된단 소리다. 2탄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기다림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목포의 작고 찰진 ‘세발낙지’의 맛을 논한 이들이 여수의 ‘밀낙지’는 얼마나 세세하게 풀어내줄까. ‘짬뽕 명가’가 유독 많다는 군산의 비밀은, ‘다찌집’으로 유명한, 목포와 ‘미항’을 두고 견주는 통영만의 ‘맛지도’는 어떻게 풀어낼까.


한 도시를 중심으로 풀어낸 음식 기행. 부키가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이 시리즈가 남도를 넘어 충청, 경기도까지 죽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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