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더 댄 워즈
제니 맥칼티 지음, 김덕순 외 옮김 / 꾸벅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제니와 작은 새 에반이 나에게 더욱 특별했던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발달장애아동센터나 일반 보육원 같은 곳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자폐 아동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만나게 되는 자폐아동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천재적인 기질을 보이며 한가지에 빠져있는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으나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는 역할들을 감당해낸다. 게다가 심리학 수업을 통해 만난 자폐아동 역시 "내가 도와주고 싶어!!" 라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하며 자폐아동을 특별히 담당하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어리고, 얼마나 환상 속에 갖혀있었는지를 깨닫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몸을 앞뒤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아이, 쪼그리고 앉아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아이, 에반처럼 쉴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아이.. 처음에는 그들에게 그 자세가 굉장히 편안한 상태고, 에너지가 넘쳐서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하지만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한 자세로 불편하게 있기 때문에 수시로 마사지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의지로 하는 행동이지만 그것이 결코 좋다거나 편안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얼마나 안타까운지.. 우리는 1분만 해도 힘들다고 엄살 피울 행동을 하루 종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그래서 무조건 가슴에 안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리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그래서 놓아주면 다시 그 자세로...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한 달도 안되어 벌써 지쳐버렸다. 눈도 마주치치 않고,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마음 문을 꼭 여며 닫은채 절대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아이들. 내가 옆에 있으나 없으나 똑같이 나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들. 수업 시간에 충분히 배웠고, 복지원 선생님들에게도 충분히 들었던 이야기인데도 막상 겪으니 너무나 힘들었다. 그런데 엄마인 제니에게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두달 뒤에 포기해버린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성애로 에반을 세상으로 이끈 제니가 너무나 멋져보였다.

두번째 이유는... 이종 사촌 중에 간질로 고생하는 동생이 있다. 우리 집안에 한번도 없었던 병인 간질을 앓는 이 친구는... 우리 집안에서도 참.. 두려운 존재이다. 달리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시기에 경기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이미 18살인 이 친구를 우리는 언제나 홀로 두지 않는다. 명절에도, 집안 행사 때도. 그 친구의 부모님이 바쁜 때는 나를 비롯한 사촌들이 절대로 혼자 어디를 갈 수 없게 한다. 

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다시 모였고, 그 친구의 집으로 갔다. 저녁 늦게 그 친구가 샤워를 하러 들어가고, 잠시 뒤 먼가 쾅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모두 갑자기 모든 소음을 줄였고, 그 친구의 어머니인 나의 숙모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필요한거 없어?"하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가 홀로 쓰러졌을까봐,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보면 자존심 상할까봐... 우리 엄마보다 5살이 넘게 어린 숙모는, 우리 엄마보다 훌쩍 나이가 들어버린 얼굴로, 나보다 적게 나가는 몸무게로 힘겹게 힘겹게 삶을 버텨내고 있었다. 다행히 존보다는 훨씬 다정하고, 협조적인 삼촌 덕에 동반자가 있어 덜 외로울 숙모지만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고, 그 친구가 학교에 갔을 때도 항상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며 불안해했다. 

내 바로 밑의 동생이었기에, 외가쪽 장녀이자 외동인 나보다 9년이나 늦게 태어난 집안 모두의 아기였기에, 모든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우리 동생.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면서 누구보다 아꼈던 동생이기에 그 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다. 동생이 아픈 것이, 숙모가 불안해하는 것이, 삼촌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나도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나 같이 아파서.. 그래서 힘들었다.

그런데 제니는 간질과 자폐증세가 함께 나오는 어린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 그 와중에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웃고, 즐거운 이야기를 쓰고,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담담하게 보이려 노력하고... 그것들이 모두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그것이 느껴져서 너무 슬펐다. 그녀의 사랑과 희생으로 에반은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뒤섞에 살게 되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긴 시간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실 남자는 여자보다 객관적이고 주변 상황과 본인을 분리시켜 바라보는 능력이 여자보다 뛰어나다. 그렇기에 아픈 아들로 인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본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도 내가 제니의 상황이었으면 더욱 더 존을 몰아세웠을 것이다. 왜 아들의 고통을 함께 겪으려하지 않냐고, 왜 그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냐고, 어떻게 24시간 에반만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냐고. 얼마나 제니가 외로웠을지 공감할 수 있어 존이 더욱 미웠다.

실제로 자식에게 장애가 있으면,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힘든 일은 함께 하면 반이 될 것 같은데, 자신의 분신과 같은 자식의 아픔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현실을 피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한 것일까. 그저 모든 것이 힘들고 짜증이 나서일까...실제로 부부 생활을 해 보지 않는한, 또 겪어보지 않는한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제니가 힘든 와중에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껴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신앙을 통해 이겨내고 견뎌내주어서 또한 감사했다. 그녀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은, 그녀가 충분히 이겨낼 그릇이라는 것을 아는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되었으며, 주님은 그 시련을 이겨낸 그녀가 얼마나 감격스러우실까..하고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 울컥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녀의 입을 통해, 그녀의 글을 통해 자폐아동을 키우는 많은 부모가 힘을 내고, 지치지 않고, 더욱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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