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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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베트남 결혼 이주자에 대한 에피소드가 소개된 인스타를 보고 영업 당해버렸다.

에세이가 늘 그렇듯,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생각이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글을 워낙 잘 쓰셔서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간다.

나는 어릴 때부터 좋게 말하면 냉소주의였고, 정확하게 말하면 비겁했다. 불의를 질끈 잘 참는다. 타인들이 원하는 연기를 잠시 해주면 내 자유가 더 확보된다는 걸 일찍 영악하게 깨우친 거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온한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 같은 것인지. 우리 하나하나는 얼마나 무력한지.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고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리고 나와 아무 상관없어도 타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옆에서 나 혼자 행복한 일상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죄스럽고 마음 무거운 일인지.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그러나 진화론, 뇌과학,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그런 비합리성까지 고려해 인간과 사회를 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합리적 태도‘는 오히려 더욱더 필요하다.
현대의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마저 저해할 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신천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위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독재에 대항한다는 학생운동 세력 역시 ‘의장님을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수준의 전체주의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투사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후배들에게 직장에의 헌신을 강요하는 꼰대로 변신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고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를 끝낸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이런 소리를 하면 이 사회에 끔찍한 불의와 비극이 가득한데 기득권자로서 자기 행복만 추구한다며 부끄럽지 않으냐는 질타를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늘 그런 부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런 질타에 머리를 숙이고 싶지도 않다. 세상을 아군과 적군, 정의와 불의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기대심리를 투영하여 과잉 열광하거나 조금이라도 자기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면 배신자 취급을 하며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하루하루를 분노, 절망, 투쟁, 당위만으로 채우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불행하다. 그리고 그들이 이끌고 가는 곳에 행복한 유토피아가 있을 리 없다.

나는 소박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채워가는, 그러면서도 마음이 가는 일에는 주저 없이 자기 힘닿는 범위에서 참여하는 이들이 이끄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비극이 가득했지만, 그 어떤 불행한 시대에서도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것도 내 의사가 아니었으니 사라진 후에 대단한 흔적을 남기고 싶지도 않다

나는 좁은 성 안에 들어와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걸 부인하면 위선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안에 갇혀 있는 죄수는 되지 말아야겠다.

폐쇄적 특권 집단에서 사회에 필요한 많은 직업군의 하나로.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흐름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발전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무엇에 주목하느냐의 문제라면 나는 이왕이면 발전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싶다. 냉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그 누구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수치를 모르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본성은 전자발찌를 채워야 할 상습 전과자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선비질’을 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불에 홀려 다가가는 부나비들을 어리석다 비웃고만 있으면 될까. 불에 덮개를 씌워 더이상 타죽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미래를 스스로 공동구매하지 않으면 강제배급받게 될 테니 말이다.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하는 강박증은 두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의 주장인지’로 광속 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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