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여행하는 시간

하루 -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박영택 지음 / 지식채널 / 2013년 1월

제목 <하루>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현재 우리나라 화가들의 좋은 작품들 중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벽, 아침, 정오, 오후, 저녁, 늦은 밤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모아 하루의 시간을 구성해 놓은 것이라 한다.  따뜻하고도 재미있는 구성이다.

원래 그림에 대한 식견이 없어 아무런 설명이 없는 그림은 좋은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일수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하루>같은 책은 그림에 대하여 흥미를 일으키게 함과 동시에 재미있는 시간을 선사해 준다.

작가의 설명에 따라 이른 새벽부터 감상하던 그림은 오후를 지나고 밤을 지나 어느새 새벽으로 되돌아와 있다.

하루를 채우는 일상들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하루를 포착해낸 작가들의 표현기법도 다양하고, 작품들의 느낌도 다채로웠다.

김수강의 <코트행거>와 같이 사진에 그림을 덧그려넣어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리게 만들어서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었고, 변윤희의 <도저히 이 기분으로 그냥 집에 갈 수 없어 들렀던 그곳>이라는 읽자마자 풋! 하고 웃음이 터저나온 그림도 있었다.

책 표지에도 소개된 2개의 그림도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김경덕의 <일상-보물>이라는 작품으로 정갈하고 깨끗한 온돌방에 이부자리가 깔려있고, 잠들기 전까지 읽었을 법한 책 두어권이 머리맡에 놓여있는 단아한 아침을 연상시킨다.

또 다른 하나는 허보리의 <완전 피곤 오징어 바디>라는 작품으로 마른 오징어 머리와 몸통과 다리에 사람 다리만 2개가 더 붙어있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자아낸다.  하루일과를 힘들게 마쳤음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기발한 작품이지만, 섬뜩한 느낌이 들어 오래 들여다 보기가 무서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한지에 먹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지와 먹은 수묵화와 당연스레 연결되던 생각에 먹으로 일상을 운치있게 그려낸 작품을 보고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샤워를 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유근택의 <샤워>는 한지와 먹으로 그린 것 같지 않게 현실감이 뛰어났다.  또, 도심 한폭판을 그린 윤세열의 <20080610>이라던가, 김범석의 <낮 12시>라는 작품이 모두 먹으로 그린 작품이다.

김호득의 <문득-오후>라는 작품처럼 한 방의 과감한 붓터치를 할 수 있는 하루가 내게도 오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