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 문정희 산문집
문정희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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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평소 시와는 달리 제목이 조금 강하게 다가오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카프카의 말(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로부터 인용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문정희 시인은 많은 나라의 시인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시인은 서른이 넘어 시작한 유학을 계기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자유여행도 있고, 문학 행사에 초대되어 가기도 하고, 창작에 몰두하기 위해 창작촌에 가기도 하여 자연적으로 여러나라를 여행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번 산문집에는 시인이 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느낌을 멋진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곳이 어디든, 무엇을 보고, 무슨일을 겪어든 그 일들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첫번째 글의 제목부터가 정말 시적이고 깜짝 놀랄만큼 멋지다.  바로 쏘아놓은 화살을 안고 찾아오는 그녀에게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었다.  내용인즉슨, 예전에 잠시 국어교사 생활을 할 당시의 제자 한명이 시인이 한 말에 감동을 받고, 시인이 좋아한다고 말한 노랑장미를 들고 해마다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언어는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여 화살에 비유한다고 한다.  그 화살을 받은 제자가 노랑장미를 한아름씩 안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센스있고, 멋진 제목이 있을까?

첫장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글은 읽는 내내 나를 충만하게 했고, 마지막까지 어떤 환상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아일랜드에서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노벨문학상을 4명이나 배출한 아일랜드의 문학과 럼주를 넣은 아이리쉬 커피, 그리고 검은맥주 기네스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그만 홀딱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미국에서 마신 아이리쉬 커피도 훌륭했는데, 본고장인 아일랜드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입맛이 절로 다셔졌다.  영국에서 마신 기네스의 맛도 되살아나는 듯 해서 갑자기 맥주 생각이 나기도 했더랬다.

각각의 경험을 토대로 탄생된 시인의 시를 첨삭해 넣은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저자의 글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미당 서정주의 문하에 들어가 아낌을 받으며 시인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입장이라면, 우리나라의 시인들과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을테고, 우리나라 문학과도 멀어지기 힘든 여건이었을텐데, 스승 미당에 대한 존경심만 나와있을 뿐, 한국의 다른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이번 책의 주 무대를 세계 각국으로 잡을 것일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어쨌든, 읽는 이를 단숨에 이국땅으로 데려가 그곳에 대해 환상을 품게하고, 이내 그곳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는 글솜씨는 정말 훌륭하기 이를데 없다.

시인을 따라 신나게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니 어느새 마지막장에 와 있게 되었다.

오래오래 곁에두고 문득문득 읽고 싶은 책이다.  내일 서점에 가서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사가지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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