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센터 건너 늘어선 주택 큰 개 순하게 매여 있네 짖을 타이밍을 잊은 개는 긴 혀를 빼물고 헐떡인다 너의 몸 어디선가 고요하게 자라고 있을 거야 - P12
시간은 나를 거들떠보지 않아요
누군가의 고통이 정말 나를 아프게 하나 나는 누워 있는 이름을 스쳐간다 곁눈질 몇 번 계절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고 봄은 한 바퀴 돌아 - P14
뭐가를 지켜내고 싶다면 오래 닫아야 하며 가장 막다른 곳에서 길게 열어야 한다. - P27
눈앞이 어지러울 때 너의 기억을 한 모금 나눠주렴 내 손으로 먹을 딴 피 흘리는 친구여 세상은 입맛을 다시며 다가오네 - P55
까마득한 아래, 자동차와 유모차가 지나다니고 찡그린 얼굴과 미소가 날아다녀 하지만 태양에 손이 닿진 않지 바람이 스치는 날엔 의심이 들어 나는 하늘에 서 있는 걸까 땅 위에 서 있는 걸까 촘촘한 시간 속을 날아다니는 영혼들은 몸이 아니라 정체성이 투명하다 - P66
이 몸이 도대체 적응되지 않는데, 넘어지는 그림자에 손을 내밀지만 펴지지 않는 주먹, 당신을 부수어도 됩니까. 얼음 바닥에 비친 내가, 순간 붉어지는 꽃, 아주 오래 작아지는 생. 정중한 신사들이 왈츠를 추는 숲, 같은 자리에 붙박인 다리, 누군가 아이를 낳았나? 나를 조여드는 리본, 커다란 나무들이 솟아나고 숲속엔 아기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어. 어, 달빛에 반짝이잖아. - P69
벙어리로 내 이름 말하고 몸서리치는 밤, 새로운 그림자를 달고 일어나고 싶어요. 어른들이 개머리판을 만들 호두나무를 찾아다니고 나는 아직 죽지 못했어요.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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