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터의 고뇌 창비세계문학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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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익숙해 있다가 조금은 달라진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다. 거의 20여 년만에 다시 읽어보니 20대에 읽었던 느낌과는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그때는 이 작품의 주인공 베르터처럼 청춘의 시기였기에 나의 독서도 그만큼 감정적이거나 격정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그 시기에 나는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책에도 심취해 있었었다.) 그런데 이제 40을 넘긴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읽어보니 슬픔보다는 고뇌쪽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에도 동의하게 된다. 삶의 길이 하나가 아니듯,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 또한 한 가닥이 아니라 여러 가닥이고 모양이나 굵기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여러 갈래로 교차되면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는다. 그리고 또 한 번쯤 이별의 아픔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베르터가 보여 준 사랑은, 어쩌면 너무도 절대적이고 너무도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김춘수의 ''을 변주하여-

장 정 일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 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라디오가 되고 싶다.

장정일의 이 시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도 쉽게 만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하며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사랑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친구에게 보내는 서간의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은, 철저하게 베르터의 독백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간의 형식이긴 하지만 편지를 받는 대상인 친구 빌헬름의 답장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고 있음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도 그 점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베르터의 독백체로 번역을 하고 있는데, 이 점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독백이란 한 사람의 인물에 의해 행해지는, 누구로부터도 방해받거나 매개되지 않는 다소 긴 발화를 말한다.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참모습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나의 이 가슴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이 가슴만이 모든 것이 샘솟는 원천이다. 모든 힘, 모든 행복, 그리고 온갖 비참함의 원천인 것이다. , 내가 머리로 아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이 가슴만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125-

베르터의 이 고백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상류층의 오만과 위선,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경계지우는 당시 사회의 모순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는 지성적인 이미지의 베르터는, 동시에 로테로부터 시작되는 아주 작은 울림에도 결결이 가슴을 앓고 격정적으로 감정의 물결에 휘둘리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감히 베르터의 이러한 격정에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베르터의 마지막 선택은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갈구의 마침표와도 같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베르터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이 잇따라 결국은 금서로까지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이 책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격정극단을 읽을 것이 아니라 순수열정’, 그리고 진심이 아닌가 싶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아니면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의 첫 만남.

그 소중한 시간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고요히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마음으로,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마주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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