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은퇴를 결심한 주인공 남훈이 장식장 깊이 숨겨뒀던 청년일지를 꺼내 과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과제는 남보다 먼저 화내지 않기,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와 같은 일종의 버킷 리스트이다.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생각했던 것은 다음 웹툰 원작인 드라마 <나빌레라>처럼 플라멩코를 배우며 꿈을 이뤄가는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많이 다르다. <나빌레라>가 좀 더 꿈에 간절한 성장 이야기라면,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스페인어와 플라멩코를 통해 가족에게 다가가는 가족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또 <나빌레라>와는 달리 고집불통의 노인을 주인공으로 코로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지루할 새 없이 빠른 전개를 보여주며 전반부에서의 여러 관계, 대화들이 가족 이야기로 수렴되며 후반부로 갈수록 높은 흡입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노년의 삶을 상상할 여유와 아버지를 잃은 모든 분께 아버지를 상상할 기회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나의 노년을 상상해 보는 기회가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그러신 것 같아요. 뭐에든, 누구한테든.

"이 차를 몰고 또 관리해 보니까, 영감님이 까다롭게 구신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주차장 입구에서 창문을 내리고 청년이 말했다.

"그래. 왜 그런 것 같아?"

아주 잠깐 청년은 말이 없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청년이 말했다.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그러신 것 같아요. 뭐에든, 누구한테든."

이 순간 남훈은 굴착기를 빌려준 늙다리 청년에게 큰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초반부에서 은퇴 전 굴착기를 팔려는 남훈이 너무 까다롭게 굴어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막상 소중한 물건을 팔려니 아쉬운 마음에 평소처럼 심통을 부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이유만은 아니었나 보다. 큰 사고 없이 일할 수 있게 해준 인생 최초의 굴착기. 아파트를 장만하고 딸의 대학을 졸업시킬 수 있게 해준 것. 팔아야 한다면 소중하게 대해 줄 주인에게 보내주고 싶은 물건. 마치 남훈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었던 모양이다. 훗날 나에게 그런 물건은 무엇이 될지 궁금해졌다.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선생님은 아버지를 만나서 행복해진 모양이군요?"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 때문에 행복해지진 않았어요." 카를로스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하고 행복해질 수 있었죠."

그제야 남훈 씨는 카를로스가 첫 수업 때 한 말을 이해했다.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라는 말을.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와의 대화를 통해 남훈은 보연을 만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가 그동안 주저했던 이유는 많았겠지만 결국 보연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기로 한다. 결국 카를로스의 말대로 스페인어가 남훈에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준 셈이다.

플라멩코를 출 때 말이죠, 가장 중요한 건 사랑입니다. 그건 이성 간의 사랑만 뜻하는 게 아녜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거죠. 그것이 타지를 떠돌며 살고 사랑한 집시의 정신입니다.

노인의 이야기여서인지 지금 시대의 청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가정사가 있다. 은퇴를 결심한 남훈이 청년일지를 돌아보고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면서 뒤늦게나마 보연을 만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의 관계와 대화에서 만남을 위한 고민을 해결하고 용기를 얻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스페인 여행에서 보연과의 사건으로 감정선이 터지며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스페인 여행 마지막 날 비로소 그는 사랑의 마음을 다 해 플라멩코를 출 수 있었던 같다. 보연과의 스페인 여행과 그 후 보연의 선물은 코끝이 찡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blog.naver.com/minyesroom/2225237533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