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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 2005년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윤성희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단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특히 허무맹랑한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나름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서술자인 ‘나’는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는다. 함께 태어난 쌍둥이 언니를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잃고 아버지는 기차간에서 자리에 앉은 채 돌아가셨으며, 할아버지 역시 당신이 키우시던 개로부터 옮겨온 회충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살던 도시에서 유명한 나이트클럽 사장이었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게 죽었고, 아버지는 배다른 아들 중 첫째로 할아버지의 사업을 도왔지만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기차간에서 쓸쓸하게 죽는다.
‘나’는 이러한 죽음들을 간략하게 서술한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슬픔이나 절망, 안타까움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나’는 전혀 그러한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너무 간략하게 서술해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감정을 절제해서 슬픔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신문의 부고란에 올라온 몇 줄의 부고 소식처럼 느껴진다.
‘나’는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 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열차의 그 자리에 몸을 싣는다. 그 열차에서 지하철 기관사였던 Q를 만난다. Q가 운전하던 열차에 한 여자가 뛰어들어 자살했다. 그 장면이 트라우마로 남아 기관사를 그만 두고 사촌형이 맡긴 중국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Q는 ‘나’를 중국집 주방 보조로 취직시켜주고 나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찜질방에서 생활한다. 찜질방에서는 W를 만난다. W는 유명한 여배우의 딸이었다. 하지만 배우가 되기 전에 낳은 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신상을 노출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가 유명해질수록 더 유령처럼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세 사람은 친분을 쌓는다. 세 사람이 찜질방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어느 날 고스톱을 치게 된다. 그런데 한 고등학생이 셋의 고스톱 판에 끼어든다. 그 고등학생은 보물지도를 내밀면서 세 사람에게 보물을 찾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정상적인 젊은이들이었다면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콧방귀를 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등학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단지 심심하기 때문이다.
보물을 찾기 위해 준비 과정에 들어간다. W와 ‘나’는 트럭 운전을 위해 운전 면허를 따고, Q는 트럭을 산다. 하지만 W와 ‘나’가 딴 면허증으로는 트럭을 운전할 수 없었고 고등학생은 길을 잘못 안내한다. 심지어 Q가 산 트럭은 금방 고장이 난다. 이러한 고난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행진한다. 그러나 그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보물은 없었으며, Q의 중국집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주방장이 식기, 음식 재료, 오토바이 등 가게의 모든 것을 털어간 뒤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합심하여 이 사태를 극복한다. Q가 만들었던 만두와 W가 좋아하는 매운 맛을 활용한 쫄면을 메뉴로 식당을 개업한다. 고등학생은 서빙을 하고, ‘나’는 일하면서 모아두었던 돈을 창업 자금으로 쓴다. 넷이 합심하여 개업한 가게는 성공을 거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네 채와 소형차 네 대를 소유한다.
작품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렵지 않게 다루고 있다. 그냥 누군가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 하나다.
대부분 우리는 누군가의 상처에 같이 아파하기보다 그들의 상처를 보며 자족한다거나 또는 더 그 상처를 크게 부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가족의 사망, 어머니로부터의 버려짐, 자살의 트라우마 등을 스스로 언급할 뿐, 타인이 대신 말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가 있다면 각자 숨기고 싶은 사연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한 부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보물은 바로 그들의 만남이었으며, 보물 지도가 안내한 곳까지 가는 과정은 곧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으며 서로의 상처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새로운 가족이 됐다는 것은 각자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심지어 이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은 점점 삭막해지는 가족 간의 관계에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