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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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 올 해로 과장 3년차가 되었고 2010년부터 시작된 직장 생활도 만 11년이 되었다. 아직 Junior였던 사원 무렵이 생각난다. 그때는 내가 직장인으로서의 소명 의식도 높지 않았고, 뭔가 대단한 것을 성취했다는 자부심도 없었고,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는 의식, 누군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느낌 역시 희박했을 때였다. 무엇보다 어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시절이 그립다. 항상 좋았다는 이상한 그리움이 피어난다. 돌아보면 우리 팀에 특출나게 잘 하는 (소위 에이스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재능과 열정을 비교하고 시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했고 조화롭게 지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언어로 바꿔 말하면, 같은 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공선(Public Good)이랄까? 그런 것이 존중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들과 일했던 그 순간이 참 마음이 편했고, 마음이 편했던 그 시절을 늘 그리워한다. 능력과 인정과 성공이라는 것에 눈을 뜨고 일하고 있는 요즘 더 그 시절이 그립다. 아마 2013년 무렵인 것 같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은 여러 의미로 아주 각별히 내 마음 여러 곳을 쓸어내렸다. 마 교수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조금 뒤에야 그의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의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 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으며 아주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옳은 것을 믿는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옳음을 강제하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그가 펴낸 신작이라 반가웠다. 무엇보다 올 한 해 내가 능력과 인정과 성공이라는 달콤한 덫에 빠져 회사 생활에 몰두했던 터라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묻는 마 교수의 질문이 더없이 날카로웠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런 것이다. "능력주의에서 중요한 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 문장을 몇 번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점차 불평등해지기만 한다.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흔히 결과의 평등은 공산주의, 기회의 평등은 그나마 인정할 수 있는 자유주의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이라는 원칙 자체가 옳은 것인지 돌아본다. "야 너도 노력하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대학 가면 좋은 직장에 가서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어. 그건 네가 당연히 얻어야 할 몫이야. 그러니까 야 너도 능력만 갖추면 할 수 있어 우리처럼 나처럼."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루저를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위너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인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틀을 깨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야너두'와 '야나두' 중에 뭐가 더 폭력일까? 너도 노력하면 나처럼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다고 내려다보는 것과 (야너두), 나도 노력하면 저곳까지 갈 수 있다고 희망을 품은 채 올려다보는 것 (야나두)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폭력적일까? 그러고 보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자산 규모로 국내 3위의 그룹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의 이 감정은 위선인가 아니면 뒤늦은 자각인가.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오랜 생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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